김선자의 시 2

저녁밥 먹고, 가!/김선자

김선자 2023. 2. 4. 00:18

저녁밥 먹고, 가!

 

김선자

 


문 앞에서 가로 막는
다정한 목소리
가지마


몽톡한 두팔이 길을 막는다
커피도 마시고
과일도 먹고
수다도 떨고
이제는 가야할 시간인데


느닷없이 가로막아 선
저 끈끈한 덩굴
가지마
저녁밥 먹고, 가!


어둠이 내리는 창밖에는 언제부터 시작했는지
희끗희끗 눈발이 흩날고 있었다


사춘기 소년이 된 손자 얼굴에 돝아난 수줍은 여드름 같은
하얀 쌀밥같은
오늘 밤 저 눈발


지난 날 꼬마 손자의
다정한 목소리도 함께 담겨져
소복소복 쌓이고 있다

 

 

ㅡ계간 <시와시학> (2020 겨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