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니스프리의 호도(湖島)/윌리암 예이츠
이니스프리의 호도(湖島)
윌리암 예이츠
나 일어나 이제 가리, 이니스프리로 가리.
거기 나뭇가지 엮어 진흙 바른 작은 오두막 짓고
아홉 이랑 콩밭과 꿀벌통 하나
벌들이 윙윙대는 숲속에 나 혼자 살으리.
거기서 얼마쯤 평화를 맛보리
평화는 천천히 내리는 것
아침의 베일로부터 귀뚜라미 우는 곳에 이르기까지
한밤엔 온통 반짝이는 빛
한낮엔 보랏빛 환한 기색
저녁엔 홍방울새 날개 소리 가득한 곳
나 일어나 이제 가리. 밤이나 낮이나
호숫가에 철썩이는 낮은 물결 소리 들리나니
한길 위에 서 있을 때나 회색 포도(鋪道) 위에 서 있을 때면
내 마음 깊숙이 그 물결 소리 들리네.
I will arise and go now, and go to Innisfree,
And a small cabin build there, of clay and wattles made;
Nine beans rows will I have there, a hive for the honey-bee,
And live alone in the bee-loud glade.
And I shall have some peace there, for peace comes dropping slow,
Dropping from the veils of the morning to where the cricket sings;
There midnight's all a glimmer, and noon a purple glow,
And evening full of the linner's wings.
I will arise and go now, for always night and day
I hear lake water lapping with low sounds by the shore;
While I stand on the roadway, or on the pavements grey,
I hear it in the deep heart's core.
Bill Douglas(Music)
- Jane Grimes(Vocalist)
<권석운 교수 >
이니스프리(Innisfree)는 우선 그 이미지와 이름이 예쁘다. 그래서인지 화장품 이름으로도 쓰이고 있는데 아일랜드 켈트족의 언어로 "heather island"라는 뜻이라 한다. "heather"는 보랏빛 꽃을 피우는 들꽃이다. 가보진 못했지만 보랏빛 꽃들이 호수 섬에 가득히 피어있고 홍방울새 날으는 평화로운 정경이 눈에 선하다. 이니스프리는 더불린에서 북서쪽으로 한참 떨어져 있는 조그만 항구 마을인 Sligo 근처에 있는 Gill 호수에 있는 작은 섬이라 한다. 예이츠는 어머니의 고향인 Sligo에 자주 갔었고 그곳에서 시적 감수성을 키웠으리라. 이 시는 1890년 그가 25세 때 썼다. 예이츠는 1923년 58세 때 노벨문학상을 수상했고 T. S. 엘리엇과 더불어 20세기 최고의 영미권 시인으로 일컬어진다. 이 아름다운 시를 쓰기 1년 전에 그는 열정적이고 화려한 미모의 여인을 만나 사랑에 빠졌다. 그는 그때부터 "내 인생의 고뇌는 시작되었다"라고 했다. 그 고뇌가 아름다운 전원시로 승화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는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그녀에게 여러 번 청혼했으나 번번이 거절 당했다. 그녀는 그를 좋아하고 존경했으나 사랑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예이츠가 38세 때 그녀는 아일랜드 독립운동가인 군인과 결혼하고 말았다. 그 군인은 예이츠가 51세 때 영국군에 의해 체포되어 처형되었다. 1917년 52세의 예이츠는 그녀를 빼닮은 그녀의 딸에게 청혼했으나 거절당했고 몇 주 뒤 그는 다른 여자와 결혼했다. 1939년 74세 때 프랑스에서 사망한 후 1948년에 그의 시신은 Sligo로 옮겨져 교회 묘지에 매장되었다. 그의 묘 비문에는 자신이 직접 썼던, "삶과 죽음을 냉정히 바라보라. 그리고 지나가라!"라는 글이 새겨져 있다.
2004년 5월 나는 국제세포치료학회(ISCT)에 참석하기 위해서 아일랜드의 더불린을 방문했다. 21세기에 들어 특히 주목을 받고 있는 줄기세포를 이용한 치료법에 대한 많은 연구 결과들이 발표되었다. 학회를 마치고 나는 옥상에 영국식 굴뚝들을 잔뜩 달고 있는 고풍스런 집들이 즐비한 더불린 시내를 마음껏 걸어다녔다. 북대서양에서 불어오는 습기 찬 봄바람이 켈트(Celtic)의 냄새가 배어있는 도시의 이곳 저곳을 스치고 지나간다. 언제인가 어느 꿈 속에서 보았던 것 같은 기시감(d j vu)을 느끼며 비 내려 축축한 거리를 걸었다. 길가 상점의 간판에서 Duffy 혈액형이 아일랜드의 성(姓)에서 유래된 것이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고, <젊은 예술가의 초상>의 작가 제임스 조이스의 동상 옆에서 그와 같은 자세로 서 보기도 했다. 아일랜드 사람들은 춤과 노래를 좋아한다. 도시에 저녁이 찾아오면 골목 안의 주점이나 레스토랑에서는 오렌지 빛 램프를 켜고 나이를 꽤 먹은 아티스트들의 드럼과 기타 연주에 맞춰 다같이 합창을 한다. 두 팔을 차려 자세로 움직이지 않은 채 다리만 경쾌하게 움직이며 추는 독특한 아이리쉬 댄스는 먼 옛날 아일랜드 전설 속의 켈트 요정들의 춤 같이 느껴졌다. 아일랜드 민요는 우리에게 친숙하다. 대니 보이, 아 목동아, 푸른 옷소매, 등을 듣노라면 우리네 한(恨)과 비슷한 아일랜드 특유의 정서가 느껴진다. 더불린은 이전부터 왠지 나에게 정감을 주었다. 예이츠(William Butler Yeats, 1865-1939) 때문이다. 학창시절에 나는 예이츠의 시(詩), 특히 <이니스프리의 호도(湖島), The Lake Isle of Innisfree>를 좋아했다. 신석정의 <그 먼나라를 알으십니까>, 노천명의 <이름없는 여인이 되어>, 김상용의 <남(南)으로 창(窓)을 내겠소> 등과 비슷한 서정성과 정취를 담고 있는 이 시는 당시 공부와 시대 상황에 찌든 우리들 가슴속에 먼 곳에의 그리움, 낭만, 또는 동경 등의 포근한 정서를 안겨 주었다.
ㅡ2010년 9월 14일에 등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