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강가에서/안도현
겨울 강가에서
안도현
어린 눈발들이, 다른 데도 아니고
강물 속으로 뛰어내리는 것이
그리하여 형체도 없이 녹아 내리는 것이
강은,
안타까웠던 것이다
그래서 눈발이 물위에 닿기 전에
몸을 바꿔 흐르려고
이러저리 자꾸 뒤척였는데
그때마다 세찬 강물소리가 났던 것이다
그런 줄도 모르고
계속 철없이 눈은 내려,
강은,
어젯밤부터
눈을 제 몸으로 받으려고
강의 가장자리부터 살얼음을 깔기 시작한 것이었다.
-안도현 시집『그리운 여우』(창작과비평사,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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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시집『서울로 가는 전봉준』(민음사,1985)으로 민중적 역사의식을 노래하던 안도현 시인은 삭막한 사람들의 마을에 사랑의 밑불을 여기저기 오래 지펴온 시인이다. 그의 넷째 시집『외롭고 높고 쓸쓸한』(문학동네,1997)에서 읽었던 “연탄재 함부로 차지마라”라는 시인의 간절한 목소리가 우리 독자의 뇌리 속에 오래 남아있다. 위 시「겨울 강가에서」도 그런 사랑의 시다. 강물 속으로 뛰어내려 형체도 없이 녹아내리는 어린 눈발을 안타깝게 지켜보던 강이 제 몸을 바꿔 그 눈을 받아내려는 사랑의 이야기. 저 강의 마음이 바로 어린 아들을 받아 안는 어미의 마음이요, 사랑하는 사람을 붙드는 애인의 마음이겠다. 시인이 어린 눈발과 강이라는 자연물을 빌려 ‘관계의 사랑’을 노래하고 있다. 이런 따스한 사랑이 돈 때문에 부모를 죽이고, 애인을 죽이는 날 선 칼바람이 거세게 부는 우리 사회에 좀더 많이 번져나가야 하리라.
-이종암(시인)
<경북매일신문> 1월 1일(금)/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