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기

그리운 시냇가 외 1편/장석남

김선자 2023. 4. 7. 17:10

그리운 시냇가 / 장석남

 



내가 반 웃고
당신이 반 웃고
아기 낳으면
돌멩이 같은 아기 낳으면
그 돌멩이 꽃처럼 피어
깊고 아득히 골짜기로 올라가리라
아무도 그 곳까지 이르진 못하리라
가끔 시냇물에 붉은 꽃이 섞여내려
마을을 환히 적시리라
사람들, 한잠도 자지 못하리

 

 

새떼들에게로의 망명 / 장석남

 

 

  1

 찌르라기떼가 왔다

 쌀 씻어 안치는 소리처럼 우는

 검은 새떼들

 

 찌르라기떼가 몰고 온 봄 하늘은

 햇빛 속인데도 저물었다

 

 저문 하늘을 업고 제 울음 속을 떠도는

 찌르라기떼 속에

 환한 봉분이 하나 보인다

 

 

  2

 누가 찌르라기 울음 속에 누워 있단 말인가

 봄 햇빛 너무 뻑뻑해

 오래 생각할 수 없지만

 오랜 세월이 지난 후

 나는 저 새떼들이 나를 메고 어디론가 가리라,

 저 햇빛 속인데도 캄캄한 세월 넘어서 자기 울음 가파른

어느 기슭엔배를 밀며 / 장석남

 

 

 배를 민다

 배를 밀어보는 것은 아주 드문 경험

 희번덕이는 잔잔한 가을 바닷물 위에

 배를 밀어넣고는

 온몸이 아주 추락하지 않을 순간의 한 허공에서

 밀던 힘을 한껏 더해 밀어주고는

 아슬아슬히 배에서 떨어진 손, 순간 환해진 손을

 허공으로부터 거둔다

 

 사랑은 참 부드럽게도 떠나지

 뵈지도 않는 길을 부드럽게도

 

 배를 한껏 세게 밀어내듯이 슬픔도

 그렇게 밀어내는 것이지

 

 배가 나가고 남은 빈 물 위의 흉터

 잠시 머물다 가라앉고

 

 그런데 오, 내 안으로 들어오는 배여

 아무 소리 없이 밀려들어오는 배여

가로

 

 데리고 가리라는 것을 안다

 찌르라기떼 가고 마음엔

 누군가 쌀을 안친다

 아무도 없는데

 아궁이 앞이 환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