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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이로움 /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폴란드·1923~2012)

김선자 2022. 10. 7. 20:17

경이로움 /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폴란드·1923~2012)

 

 

무엇때문에 그 누구도 아닌 바로 이 한사람 인걸까요?

 

나머지 다른 이들 다 제쳐두고 오직 이사람인 이유는 무엇일까요?

 

나 여기서 무엇하고 있나요?

 

수많은 날들 가운데 하필이면 화요일에?

 

새들의 둥지가 아닌 사람의 집에서?

 

비늘이 아닌 피부로 숨을 쉬면서?

 

잎사귀가 아닌 얼굴의 거죽을 덮어쓰고서?

 

어째서 내 생은 단 한번 뿐인걸까요?

 

무슨 이유로 바로 여기, 지구에 착륙한 걸까요?

 

이 작은 혹성에?

 

얼마나 오랜 시간 동안 나 여기에 없었던 걸까요?

 

모든 시간을 가로질러 왜 하필 지금일까요?

 

모든 수평선을 뛰어넘어 어째서 여기까지 왔을까요?

 

무엇때문에 천인(天人)도 아니고, 강장 동물도 아니고, 해조류도 아닌걸까요?

 

무슨 사연으로 단단한 뼈와 뜨거운 피를 가졌을까요?

 

내 자신을 나로 채운 것은 과연 무엇일까요?

 

왜 하필 어제도 아니고, 백 년 전도 아닌 바로 지금

 

왜 하필 옆자리도 아니고 지구 반대 편도 아닌 바로 이곳에 앉아서

 

어두운 구석을 뚫어지게 응시하며

 

영원히 끝나지 않을 독백을 읊조리고 있는 걸까요?

 

마치 고개를 빳빳이 세우고 으르렁거리는 성난 강아지처럼

 

 

 

-시집「끝과 시작」(문학과지성사, 2007, 최성은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