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자의 시 1
다듬이/김선자
김선자
2023. 4. 29. 15:52
다듬이
ㅡ바늘 서사 12
김선자
창호지 바른 창문에
그림자 어른거리는
어머니 손놀림이 있어야 한다
호롱불에 비치는
두 방망이가 있어야 한다
고깔 쓴 여인의 나비춤이 있어야 한다
길고 짧고 길고 짧고
둔탁하고 경쾌하고 빠르고 느린
때리면 때릴수록
고분고분해지는
나긋한 종아리도 있어야 한다
콩닥 콩다닥 콩닥 콩다닥
먼 데서 다리 절며 오시는 손님
풀 멕인 모시적삼도 두들겨야 한다
동해에서 잡은 명태도
마른 오징어도
두들겨 패야한다
소머리 돼지 머리는 다듬이 밑에
눌러서 숨죽여야한다
두들겨도 되는 것
뒤집어야 어깨가 가벼워 지는
창호지 그늘에 구멍이
숭숭 뚫려야 다듬이가 폭신해 지는
어머니는 그만 숨이 차서
가슴팍을 세게 두드려야 한다
ㅡ시집 《어머니의 바늘》, 시와시학,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