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자의 시 1
베틀/김선자
김선자
2023. 4. 29. 16:15
베틀
ㅡ바늘 서사 16
김선자
어두울수록 더 환하던 밤
거들먹거리고 거뭇거뭇 손때 묻은 나뭇결
둠벙에 자주 빠져 쪽쪽쪽거리던
귀에 익숙한 쏙독새노래 흥에 겨워
베틀에 오르고 내리고 힘든 줄도 모르던
능숙하게 짠 올 고운 무명베 한 필
식구들 골고루 옷 지어 입히던
장다리꽃 닮아 가던 할매
할매 주머니에 가득한 장다리꽃 씨앗
씨앗하나 하나 다정한 손길로 다독거리며
나직나직 중얼 거리던 다정한 할매
웃음도 설움도 즐거움도
시름도 고달픔도 다 잊어버리고
눈물주머니 속에서 짜여 지던 베 한필
장다리꽃 필 무렵
무명 베 감고 먼 하늘 길 훌쩍 떠난 할매
베틀도 서운한지 자주 삐걱거린다
ㅡ시집 《어머니의 바늘》, 시와시학,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