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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비가-루돌프 카스너에게 바침 /릴케

김선자 2023. 8. 30. 21:05

제8비가-루돌프 카스너에게 바침

 

 릴케

 

 

 모든 눈으로 피조물이 보는 것은

 열려 있는 것. 오직 우리의 눈만

 거꾸로 된 듯 피조물의 둘레를,

 덫이 되어 그 자유로운 출구를 꽁꽁 둘러 막고 있다.

 바깥에 있는 것, 그것을 우리는 오직 짐승의

 표정에서 알고 있다. 왜냐하면 아이를 어릴 적부터 벌써

 우리가 돌려놓고 강요하기 때문이다, 뒤쪽으로

 형상들을 보도록. 열린 것은 못 보게,

 짐승의 얼굴에는 그토록 깊숙한 것. 죽음으로부터 자유롭게

 죽음을 보는 것은 우리뿐이다. 자유로운 짐승은

 몰락을 끊임없이 뒤로 하고

 앞에는 신(神)을 두고 있다. 그리고 떠날 때는 그렇게

 영원 속으로 간다, 마치 샘물이 흘러가듯.

        우리는 결코, 단 하룻날이라도

 우리 앞에 순수한 공간을 갖지 못한다, 그 안으로 꽃들이

 영원히 피어나 들어가는. 언제나 있는 것은 세계일 뿐

 '아니'를 모르는 '없는 곳'은 한번도 없으니, 그 순수한 것,

 감시되지 않는 것, 우리가 숨쉬면서

 무한히 알며, 욕망하지 않는 것. 어린아이 적에는

 고요한 가운데 이것에 흘려

 마음이 흔들리기도 하지. 아니면 죽어서 그것이 되기도 한다.

 죽음 가까이에서는 더 이상 죽음이 보이지 않기에

 바깥으로 응시하는 것이다, 어쩌면 커다란 짐승의 눈으로.

 사랑하는 이들도, 시야을 왜곡시키는 상대방만

 없다면, 거기에 가까이 이르러 놀라련만------

 마치 실수처럼 그들에게는 서로

 상대방 뒤쪽이 열려 있는데------ 그러나 상대방 위로는

 아무도 더 오지 않고 그에게는 다시 세상이 되어버린다.

 언제나 피조물은 향하고 있기에 우리가 보는 것은

 오직 그 위에 어리는 바깥 세상의 되비침일 뿐이다.

 그것도 우리 때문에 어두워진 것을. 아니면 한 마리 짐승이

 말없이 올려다보고 있으려니, 조용히 우리를 꿰뚫어.

 이것을 운명이라고 한다, 마주서 있기,

 다름아닌 이것, 언제나 맞은편에서.

 

 우리 것과 같은 의식이 만일

 다른 방향에서 우리를 마주 향해오는

 안전한 짐승 속에 들어 있다면ㅡ그의 걸음걸이로

 우리의 방향도 돌려놓으련만. 그러나 그의 존재가 그에게는

 무한하고, 모양 갖춘 것도 아니며, 그의 상태를 향한

 시선도 없이, 순수하다, 마치 그의 내다봄처럼.

 그리고 우리가 미래를 보는 그곳에서 짐승은 모든 것을 보며

 그 모든 것 속에 들어 있어 영원히 구원받은 저 자신을 본다.

 

 그러나 방심하지 않는 그 따스한 짐승 속에도

 아주 무거운 마음의 무게와 근심이 들어 있다.

 자주 우리를 사로잡는 것,ㅡ회상이

 그에게도 언제나 달라붙기 때문이다,

 마치 우리가 다투어 얻으려는 그것이

 벌써 언젠가 한때는 더 가까이에, 더 충실하게 있었고

 그 연결도 한없이 달콤했다는 듯이. 여기서는 모두가 떨어져 있지만

 그곳에서는 모두 한숨결이었지. 첫번째 고향 다음으로

 두번째 고향은 그에게 확실치 않고 바람도 세다.

         오오 작은 피조물의 행복함이여,

 저를 품었던 자궁 속에 언제까지나 머물러 있으니.

 오오 하루살이의 행복이여, 여전히 속으로 뛰어노는구나,

 교미를 할 때조차. 자궁이 전부이기에.

 그런데 보라, 새의 불완전한 안전을.

 새는 자신의 근원으로부터 안팎을 거의 알고 있다.

 마치 에트루리아 사람의 영혼이기라도 하듯이.

 하나의 공간이 맞아들인 시체로부터 나왔으면서도

 뚜껑처럼 정지하고 있는 형상으로.

 그러니 날아야 하는 한 마리 새는 놀란 것 같으면서도

 하나의 자궁에서 나온 것이다. 마치 저 자신한테

 놀란 듯, 새는 허공을 번개처럼 지나간다, 마치

 찻잔에 금이 가듯이. 그렇게

 박쥐의 자취가 밤의 도자기를 가르고 날아간다.

 

 그런데 우리는 관객, 언제나, 어디에서나,

 온갖  것들을 향해 있고 결코 벗어나지 못하다니!

 그것들은 우리한테 너무 많다. 우리가 정돈해도 무너지고 만다.

 우리는 그것들을 다시 정돈하면서 우리 스스로 무너진다.

 

 누가 도대체 우리를 돌려놓았기에

 우리가 무슨 짓을 하든,

 떠나가는 자의 자세를 갖게 되었는가? 그가,

 골짜기 전체를 다시 한번 보여주는 언덕 위에서

 몸을 돌려 멈추고 머뭇거리듯이ㅡ,

 우리도 그렇게 살면서 언제나 작별하는 것이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 / 안문영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