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자의 시 2

익숙하다/김선자

김선자 2023. 11. 15. 15:19

익숙하다

 

김선자

 

 

더듬어 시집을

머리맡 책들 위에 두고

스탠드 전등을 끄고 주섬주섬

책갈피를 끼운다

두 눈 대신 두 손이 눈이다

어둡다거나 밝다거나 하는 건

일상에 젖은 습관일 뿐이다

시각이 촉각에 양보하기만 하면

눈을 감아도 보일 것은 다 보인다

조금 전 읽었던 시 구절

끼고 있던 돋보기안경 놓인 자리

옷이 걸린 옷걸이

책상 컴퓨터 티브이 액자 시계

어둠속에서도 밝게 보이는 것들

익숙하다

온몸이 눈이다

그 중에 가장 또렷한 눈은

두 손이다

오늘도 이 두 손이 하는 일

욕망의 골짜기 빈 손이 될 수 없다는 듯이

쥐었다 폈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