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기

육십 세​/손진은

김선자 2024. 2. 5. 20:47

육십 세

​손진은

 

머리 꼭대기에 올라온다는 말이 있지

뉘엿, 해가 넘어가는 도서관 언덕 숲길

평소 같으면 얼씬도 못 할 가소로운 직박구리 자식이 한쪽 발가락이 살짝 불편한 까치를 비행편대인 듯 공중에서 활강하여 덮치기를 수십 번, 피하다 못 한 그놈이

하필 그 광경 제법 애처로이 바라보는 사내 반백의 머리통 위로 올라타냔 말이지?

외면할 수도 없는 영혼의 머리 둔덕에 불을 붙이고,

뇌수에 발가락을 들이미는 뜨거운 시간

 

눈을 씻고 봐도 와주지 않는, 금지상정(禽之常情)도 모르는 동족 같은 것 말고 식은땀 나는 인생, 그에게로 피신한

어쩌면 전생에선 그의 새끼였을지도 모르는 놈,

꼬리 까닥이는 그놈이, 흑요석 같은 눈빛으로 꼭 ‘메멘토 모리’ 어쩌고 같은 말을 지껄이며

날 두고 당신만 평안하게 갈 거냔 표정 지을 때

그래, 이 별에서의 여섯 번째 십 년

비듬처럼 어깨에 쌓인 후회며 피로를 털어낼 수만 있다면

내 새끼 몸에 손가락 하나 까닥하기라도 해봐

머리 꼭대기에 올라온 녀석을 치켜들고

날 세우고 걷는 생의

탱탱한 시절이라 왜 말할 수 없으랴

​ㅡ웹진 《시산맥》 (2024년 1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