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기
데레사!/박창기
김선자
2024. 6. 6. 14:12
데레사!
박창기
평생을 아내로 열심히 산 그대은 훌륭했소
몸져누운 아내 곁에서 임종 면회를 하고 나니
살았으니 죽을때도 있음을 기억하겠네
백 년은 살 수 있다고 야단들인데,
그 근처도 못 가서 그만 멈춰서 버렸네
백 년도 부처님 눈 한 번 감았다 뜨는 촌음인데
인간은 왜 평생 살 것처럼 호들갑인가
그 평생이 하늘의 뜻을 뛰어넘을 수는 없는 법
어떻게 살았든 언젠가는 죽는다
그러니 영원하지 않은 삶에 매달리지 말고
순간에 목숨 걸지 말고
소중한 오늘에 신명을 다하고 기억하자
죽음을 기쁘게 받아들이기 위하여
준비하는 기간이 바로 오늘이 아니겠는가
오늘이 끝나면 너도 나도 아무것도 아니다
이 생에서의 기억은 모두 소멸되고
추억이라는 실타래를 풀기 시작할 때이다
죽음은 이 생에서 저 생으로 한 발짝 건너가는 일
거룩하게 산 그대는 아마도 무지개다리를 건널 것이오
가장 부끄러운 건 나의 사랑이 부족했다는 것이오
부디 용서하오
그리고 절대 뒤돌아보지 마오
ㅡ박창기 시집 《고맙고, 고맙다》, 그루, 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