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쇠똥 / 김선자
아버지와 쇠똥 / 김선자
햇볕이 유난이 쨍쨍하던 어느 여름날 오후, 낮잠이나 잘까 생각하고 있는데 아버지가 부르시더니
“야야 저 길에 가서 쇠똥 좀 주워오너라”
하시는 것이었다. 나는 깜짝 놀라서
“예? 뭐라꼬예.”
했더니
“소 똥 말이다”
하신다.
“어데 쓰실라꼬예?”
나의 재차 물음에
“내가 쓸데가 있어 그런다.”
하신다.
아버지는 자상도 하시지만 엄격하셨기 때문에 거역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입을 쑥 내밀고 궁시렁 거리며 밀집모자를 푹 눌러 쓰고 운동화에 장갑을 끼고 자루를 메고 집게까지 들고 집을 나섰다.
날씨는 엄청 더웠다. 아랫마을로 향하는 길을 걸으면서 쇠똥을 찾기 시작했다. 소들은 걸어가면서 아무 때나 무시로 배설을 하고 한 번에 누는 양도 엄청났기 때문에 길에는 소가 냅다 갈긴 똥들이 제법 많았다. 소가 똥을 눌 때는 엉덩이를 약간 쳐들고 꼬리를 흔들면서 툭 툭 떨어뜨렸다. 축축한 똥은 집을 수가 없고 마른 것은 누룽지처럼 땅에 들어붙어 있어서 집게로 긁어 가면서 주워야 했다.
처음엔 누가 볼가 봐 전전 긍긍하고 또 더럽게도 느껴졌다. 그러나 계속 똥을 주워 자루에 넣고 자루가 자꾸 불룩해 지니까 신이 나서 누가 보는지 개의치 않고 노래도 흥얼거리며 집게에 똥을 집어서 자루에 넣는 일을 계속했다. 너무 더워서 화끈거리고 땀이 등줄기를 타고 흘러 내리는 것도 다리가 아픈 줄도 한 순간 잊어버렸다. 오직 많이 주워 담아서 아버지를 기쁘게 해드리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한 동안 매일 그 일을 계속했다. 나도 모르게 시간을 정해서 길을 나서기도 했다. 반복되는 동안 그 일은 나의 일상 속에 들어오게 되고 쇠똥 냄새에도 익숙하게 되었다.
아버지는 날씨가 따뜻해지자 화분을 사들이기 시작하셨다. 그리고 근무하는 곳에서 싹을 낸 모종을 가져 오기도 하고 마당에 있는 꽃을 화분에 옮겨심기도 하여 화분 수가 무려 100여개가 넘게 되었다. 이름도 다 못 외울 만큼 많았다.
나는 좀 궁금해졌다. 뒷문을 나서면 바로 논두렁길이고 얼마 안 걸어서 야산에 오르는 길섶에는 봄부터 가을까지 갖가지 야생화가 피고지고, 패랭이, 들국화, 민들레, 쑥부쟁이, 버들강아지, 나생이, 쑥, 질경이, 씀바귀 등이 지천으로 나를 반겼다.
나지막한 산을 오르면 망개나무, 벌똥열매, 산딸기, 산머루, 등을 만난다. 좀 더 올라가면 참나무, 진달래, 떡갈나무, 옻나무, 소나무, 오리나무 등이 어우러지고 이름도 알 수 없는 나무와 숲을 만난다. 그 숲의 싸한 향기는 바람이 살랑대기라도 하는 날이면 기분이 기가 막히게 좋았다. 밤이면 집 앞 들녘의 논에서 개구리들이 시끄럽게 울어대어 잠을 설치기도 하지만 정취도 있었다. 해 지는 무렵의 냇물은 마치 금가루를 뿌려 놓은 듯 눈이 부셨고, 죽 뻗은 가로수와 신작로는 어딘가로 떠나고 싶은 향수에 젖게도 했다.
몇 가구 안 되는 촌락에선 저녁마다 연기가 피어오르고 밥 먹으라고 아이들 부르는 소리가 정겹게 들리곤 했다. 아버지는 그 논두렁길을 매일 밟으며 출근을 하고 퇴근을 하시면서 무슨 꿍꿍이로 화분을 저리도 여러 개 키우신단 말인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 해 내가 주운 쇠똥은 제법 많아서 수북한 모양새가 되었다. 쇠똥은 땅에 떨어질 때는 수분이 넉넉했으나 이내 말라서 꺼덕꺼덕해지고 원추형이던 모양이 넓적하게 땅에 널브러진다. 냄새는 진하지는 않았으나 약간의 구수하면서도 구린내가 났다. 아버지는 쇠똥을 이리저리 젓고 섞어서 마당 귀퉁이에 구덩이를 파고 묻으셨다. 그리고 약간의 오줌을 갖다 부셨다. 두엄을 만들어 화분 거름으로 사용하고자 했다. 소는 여물만 먹지만 숙성시켜 두엄이 되면 나무나 꽃을 키우는 좋은 거름이 된다고 하셨다.
나는 내가 주워온 똥이 땅에 묻혀서 썩을 때까지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리라 생각했다. 매일 숙성되는 과정도 보살피며 신경을 썼는데 그러는 동안 나의 생활은 기대와 애정과 즐거움으로 바뀌고 있었다. 산골의 나날이 쇠똥 썩어가는 냄새와 함께 지나가고 있었다. 쇠똥 냄새가 몸에 배이고 있었던 것이다.
어서 봄이 와서 저 거름을 먹은 꽃나무와 채소들이 무럭무럭 자라고 예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기만 기다렸다. 꽃들이 추위에 얼어서 죽을까봐 100개가 넘는 화분을 겨우내내 저녁이면 실내에 들여놓고 낮이면 뜰에 내어 놓는 일도 별로 힘겹게 느껴지지가 않았다. 땅 속에서 변화되고 있는 쇠똥만 궁금했다.
그 쇠똥에는 아버지가 딸을 염려하는 깊은 정도 담겨져 있었다. 그 정은 쇠똥 거름과 함께 나를 키우고 사람답게 살도록 했다. 기다려야 한다는 것, 어떤 곳에서라도 섞이고 발효되어 자기의 냄새를 가지되 요란하지 말고 온순하며 순종하라는 것, 그리하여 시간을 소화하고 새김질하면서 인생이란 먼 길을 걸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하셨다.
이제 스무 살을 갓 넘은 딸이 잡고 싶어 하는 숱한 욕망들을 가늠하시며 그 것을 놓쳤을 때 딸이 좌절하지 않고 인생이라는 먼 길을 꿋꿋이 걸어갈 수 있도록 아버지는 배려하신 것이었다.
쇠똥 냄새는 아버지 방에서 풍겨 나던 냄새를 닮아 있었다. 아버지는 바로 쇠똥과 같은 존재처럼 느껴졌다. 한없는 서글픔과 외로움을 안고 시작한 산골 생활은 계절이 바뀌면서 달라지는 산천의 풍경과 청량한 공기, 밤하늘에 반짝이던 별들과 맑고 고운 달빛, 따뜻한 이웃의 인정으로 무르익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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