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자의 시 1

벽/김선자

김선자 2022. 10. 12. 16:45

 

김선자

 

 

달력 뒤장에 구멍이 났다

그리로 세월이 우르르 빠져 나가고

나간 날들은 돌아 올줄 모르고

달력이 걸려 있던 벽이 하얗게 질려 있다

벽은 자기를 가리고 있던 달력을 잡지 못하고

머물고 있던 세월조차 놓쳐버리고

그만 뻥 구멍이 뚫렸다

달력 뒷 발에 호되게 차인 벽

할 말을 잃어 가는 벽

하루가 나간 자리 천년이 온다해도

열 두달 감싸 안던 달력의 따스함

벽은 잊을 수 없다

만날 날 기다린다

조금씩 흔들린다

벽은 구멍난 달력 뒤로

넓은 세상 바라 보고 싶어

수 천년이 놀고 있는

 

ㅡ시집 <어머니의 바늘>, 시와시학,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