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기

플라타너스/김현승

김선자 2024. 9. 12. 19:11
플라타너스


김현승


꿈을 아느냐 네게 물으면,
플라타너스
너의 머리는 어느덧 파아란 하늘에 젖어 있다.

너는 사모할 줄을 모르나
플라타너스
너는 네게 있는 것으로 그늘을 늘인다.

먼길에 올 제
호올로 되어 외로울 제
플라타너스
너는 그 길을 나와 같이 걸었다.

이제 너의 뿌리 깊이
나의 영혼을 불어넣고 가도 좋으련만
플라타너스
나는 너와 함께 신(神)이 아니다!

수고로운 우리의 길이 다하는 어느 날
플라타너스
너를 맞아 줄 검은 흙이 먼 곳에 따로이 있느냐?
나는 오직 너를 지켜 네 이웃이 되고 싶을 뿐
그 곳은 아름다운 별과 나의 사랑하는 창이 열린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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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존적으로 고독자, 단독자인 우리 인간에게는 반려가 절실히 필요하다. 현실적인 반려가 없으면 정신상의 반려라도 필요하다. 그것이 무엇이든 자기를 이해하고 격려하고 도와 주며 자기를 알아 주는 위로자가 필요하다. 이 시는 플라타나스는 위로자, 반려자로 사용되기에 매우 적절하다. 그 모습과 풍치와 품위 있는 무늬는 반려자가 되기에 충분해 보인다. 꿈의 표상인 파아란 하늘과 풍성한 잎새를 머리에 이고 서 있는 플라타나스, 외로운 귀가 길에 늘 위안의 반려가 되듯 줄지어 서 있는 가로수가 눈앞에 선명히 떠오르는 시다. 이 시는 종교적인 어휘가 쓰이지 않았으면서도 종교적인 사랑가 위로와 헌신, 그리고 영혼의 구제(救濟)를 느끼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