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기

봄 / 오규원

김선자 2025. 2. 9. 21:18

/ 오규원


저기 저 담벽,
저기 저 라일락,
저기 저 별, 그리고
저기 저 우리집 개의 똥 하나,

그래 모두 이리 와
내 언어 속에 서라
담벽은 내 언어의 담벽이 되고,
라일락은 내 언어의 꽃이 되고,
별은 반짝이고,
개똥은
내 언어의 뜰에서 굴러라

내가 내 언어에게
자유를 주었으니 너희들도
자유롭게 서고,
앉고, 반짝이고, 굴러라

그래 봄이다
봄은 자유다
자 봐라,
꽃 피고 싶은 놈 꽃 피고,
잎 달고 싶은 놈 잎 달고,
반짝이고 싶은 놈 반짝이고.
아지랑이고 싶은 놈은 아지랑이가 되었다
봄이 자유가 아니라면
꽃 피는 지옥이라고 하자
그래 봄은 지옥이다
이름이 지옥이라고 해서
필 꽃이 안 피고,
반짝일 게 안 반짝이든가

내 말이 옳으면
자, 자유다
마음대로 뛰어라.


-오규원 시집
<가끔은 주목받는 生이고 싶다>19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