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기
대구신문 <좋은 시를 찾아서>485 문현미 시인
김선자
2025. 4. 9. 23:46
바람의 길/문현미
그들의 뼛속에는
약속의 땅으로 가야 할 바람이 새겨져 있다
간절한 바람을 제대로 읽지 못한
나, 이제 허겁지겁 바람의 뒤축을 좇아
수천, 수만 겹 바람 속을 걸어가고 있다
바람의 옷을 입고 벗으며
수없는 그늘의 날들이 맥없이 오고 갔지만
흰옷을 즐겨 입던 겨레의 새벽을 여는
바람은 설령, 죽었다 다시 살아난다 해도
닿을 수 없는 천상의 것이어서
바람 앞에 선 나는
한낱 어리석은 누추일 뿐이다
바람이 분다
오늘도 그 바람의 시간으로 살아야겠다
그립고 아득한 숭고의, 그 길을
ㅡㅡㅡㅡㅡ
□약력:1998년 계간『시와 시학』으로 등단. 독일 아헨대학교 문학박사, 독일 본대학교 교수 역임. 박인환문학상, 풀꽃문학상, 한국시인협회상 등 수상. 시집『가산리 희망발전소로 오세요』,『사랑이 돌아오는 시간』,『몇 방울의 찬란』칼럼집 『시를 사랑하는 동안 별은 빛나고』등.역서『라이너 마리아 릴케 문학선집 1-4권』,『말테의 수기』 안톤 슈낙『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것들』등. 현재 백석대학교 교수, 백석문화예술관·백석역사박물관 관장(부총장), 한국시인협회 이사, 시사랑문화인협의회 부회장 등
□해설: 폴 발레리의 시 「해변의 묘지」 "바람이 분다, 살아야 겠다!"의 또 다른 변용을 놓고 시인은 그립고 아득한 숭고의, 그 길을 찾고 있다. 목적은 이미 뼛속에 있고 길의 안내자 이거나 길의 방해자인 바람과 맞부딪치며 길을 가고 있다. 바람은 보여지는 것이 아니어서 시인은 옷깃의 펄럭임으로 바람을 감지하고 있으며 바람 앞에 선 자신을 "한낱 어리석은 누추일 뿐이다"라는 자학도 곁들인다. 그러나 살아봐야겠다고 천상을 향한 인간으로서의 인내에 즙을 짜내어, 겨레가 나아갈 길 위에 정신의 노둣돌을 놓고 있다.- <박윤배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