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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읽기

우리가 사랑한 모든 거짓말들/박지웅

by 김선자 2023. 3. 15.

우리가 사랑한 모든 거짓말들

 

   박지웅

 

 

 

사랑스러운 말들을 잔뜩 뭉쳐놓으면

종잇조각이 되기 십상이라 했지요

 

당신이 종이로 만든 꾸깃꾸깃한 눈물이나 방울새 하나 손바닥에 올려주면 안주머니에 받아 넣었지요

 

종이 속에서 가늠할 수 없는 울음소리가 새어 나올 때마다 지그시 쥐었다가

볕 좋은 창가에 올려두었지요

(그래도 날아가진 않아요)

 

우리가 사랑한 모든 거짓말들은

붉고 아득한 저녁과 함께 종이 관에 넣었지요

 

달리 장례를 치르지 않아서일까요, 죽은 것들이 가끔 심장에서 두근거리지만요

이미 사라진 것들이라도 그럴 수 있는 거잖아요

 

종이 뭉치가 저절로 풀리듯

그냥 나무 하나가 별을 향해 걸어간 죄로 사과를 낳았거나, 달콤하게 생각해요

(입안에 고인, 고이는 일종의 맛있는 실망!)

 

그러고 보니 우리가 말아서 버린 새와 종이와 거짓말은 다 한 핏줄이었어요

가장 부드러운 쪽부터 바뀌는

 

 

            ⸺월간 《現代文學》 2021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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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웅/ 1969년 부산 출생. 2004년 《시와 사상》 신인상. 2005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시집 『너의 반은 꽃이다』 『구름과 집 사이를 걸었다』 『빈 손가락에 나비가 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