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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자의 시 1

백마는 가자 울고/김선자

by 김선자 2023. 3. 25.

백마는 가자 울고

바늘 敍事 ㆍ 21
 

 김선자


가수 명국환이 부른 이 노래는
어머니의 애창곡
어릴 적 나만 보면 불러 달라 하셨다
백마는 가자 울고 날은 저문데
나는 반듯하게 서서 두 손을 앞으로  모으고
노래를 불렀다
그럴 때면 어머니 재봉틀 돌아 가는  소리는
요란해지고 어깨는 들썩이셨다

어느 날 말 한 마리가
재봉틀  위에서
힘차게 달리는 걸 보았다
갈기를 휘날리며 광야를 가로질러
말은 히히힝 콧김도 뱉어내며
앞다리는 경쾌하게 쳐들고
뒷다리는 땅을 차며
파란 하늘 밑을 빠르게 달려갔다

어머니가 올라타고 계셨다
'얘들아~' 신나게 손 흔들며
말 엉덩이를 툭툭 치셨다
백마야 어서 가자
어머니는 왜 말 타고 가시는 걸까
저토록 간절한 외출은 본 적이 없었다

백마가 떠난 방
재봉틀에 짓밟힌
실오라기들이 훨훨 날아  다녔다

ㅡ시집 <어머니의 바늘>, 시와시학,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