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詩作) 및 시는 구원이다. (중략) 시에서 뭔가 구원을 노래함으로써 어떤 시적 결론을 얻게 되는 과정이 구원이 아닌, 시를 쓴다는 어떤 과정 그 자체가 구원이고, 보다는 나에게 있어서는 이 세상에 시가 있다는 그 사실 자체가 구원읷 수도 있다.
마치 하늘이 있고 아름다운 노을이(내 의지와는 관계없이) 있다는 그 사실이 그대로 구원이 되듯이 말이다.‛" 김춘수, 「시작(詩作) 및 시는 구원이다」, 『김춘수 전집 2』, 도서출판 문장, 1984 ----------------------------- 꽃을 위한 서시/김춘수 나는 시방 위험한 짐승이다. 나의 손이 닿으면 너는 미지의 까마득한 어둠이 된다. 존재의 흔들리는 가지 끝에서 너는 이름도 없이 피었다 진다. 눈시울에 젖어드는 이 무명의 어둠에 추억의 한 접시 불을 밝히고 나는 한밤내 운다. 나의 울음은 차츰 아닌 밤 돌개바람이 되어 탑을 흔들다가 돌에까지 스미면 금이 될 것이다. ……얼굴을 가리운 나의 신부여. "사물의 본질에 도달하고 싶은 욕구와 그 불가능성이라는 철학적 주제를 다룬 작품이다. 이 시에서 ‘꽃’은 사물에 내재해 있는 본질 혹은 본질적 의미로 해석된다. ‘나’는 그것에 접근하여 본질을 해명하고자 하는 인식 주체이다. 그러나 그의 간절한 욕구와 시도에도 불구하고 사물의 본질은 밝혀지지 안는다. 그가 사물의 본질에 해당하는 것(꽃)을 포착했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것은 이미 사라져 버리고 없다. 사물의 본질은 언제나 완전한 인식의 가능성 저편에 있으며, 마치 "영원히 얼굴을 가리운 나의 신부"와 같다. 이 시는 이러한 안타까움과 슬픔으로부터 솟아나오는 ‘나’의 간절한 부름으로 끝맺어진다. "얼굴을 가린 나의 신부"는 곧 영원히 잡을 수 없는 ‘꽃’이요, 존재의 본질에 해당된다. - 김흥규, {한국 현대시를 찾아서} ------------ 김춘수 김춘수는 1922년 경남 충무에서 출생하였다. 경성제일고보를 거쳐 니혼대학에서 수학하였다. 1948년 『죽순』에 「온실」을 발표하고 첫 시집 『구름과 장미』 를 간행하면서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다. 시집으로 『 늪 』(1950), 『기(旗) 』(1951), 『꽃의 소묘』(1959), 『부다페스트에서의 소녀의 죽음』(1959), 『타령조 기타』(1969), 『처용 』(1974), 『처용 이후』(1982), 『처용 단장』(1991), 『들림, 도스토예프스키』(1997), 시론집으로 『한국현대시형태론』(1958), 『시의 이해』(1972), 『의미와 무의미』(1976) 등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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