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디
김선자
스무디
너를 부르면 너에게로 부드럽게 빠져들어
그곳에 깊숙한 골짜기 있어
골짜기마다 온갖 향내 진동하는
오색 찬연한 폭포소리 있어, 스무디
연원을 알 수 없는 생명들 숨 쉬고 있어
숨 쉬는 것들은 푸릇푸릇 모여 들어 지구가 돌아가고 있어
어지럼증이 어지럽게 빙글거리고 있어
석류씨만한 후회도 없이 분쇄되고 엉기는 별들의 아픔이 있어
진액이 되기엔 아직 일러 기다리지 마, 스무디
은하에 다다르기엔 너무 늦어, 이슬처럼 사라지지 마
앵두가 되든 토마토가 되든 키위가 되든 사과가 되든
딸기 밭을 헤매던 햇빛
따돌림 받던 축축하던 습기, 바람은 횡포를 부리고 있어
생각이 나는가, 스무디
차가운 얼음 속에서 분노하던 열기를
보호색이 사라진 페르소나의 얼굴을
그것은 늪이었어
그것은 질긴 인연이었어
돌아 서기엔 너무 늦은 캄캄한 혼돈이었어
흘러가 버리고 싶다고 말할 때가 되었어, 스무디
몸부림치며 투명한 유리병 속으로 가고 있어야 해
상큼한 아우성이야, 스무디
우주가 섞여 회오리치고 있어
너를 부르며 너에게로 빠져 들고 있어
사라지고 싶은가, 스무디
오후가 그림자에 삼켜지는 것처럼
*스무디: 신선한 과일 등을 얼려서 갈아 만든 음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