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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자의 시 2

0.5층의 노래/김선자

by 김선자 2022. 10. 12.

  

0.5층의 노래

김선자
 
 
생이 짧다고 느끼십니까?
 
7층과 8층 사이 그 어디 쯤
떠 있는 소수점의 층이 있습니다
 
주황빛 능소화가 간혹 엿보고 갑니다
계단의 모서리를 이어보는 0.5층 삶의 솔기
터지면 다시 핀으로 고정하는 초침들
백과사전을 신고 가던 가지런한 시간의 등 너머
파랑새처럼 새장 밖으로 날아간 적 있습니다
 
알 수 없는 소수점의 미래
수북이 쌓인 생일 상자의 멋진 리본조각들만 펼쳐 봅니다
찔레꽃 원추리 산국화 피었다 지고
소수점의 생은 메트로놈*으로도 잴 수 없는 악기
층층새 울음의 무반주 노래 같은 것
 
모자 쓴 시계처럼 멋을 부려보고 싶은 날
생이 짧다고 흥얼거리는 오후
언제였던가 0.5층은 0.5층에서
숨죽인 계단에 주저앉아 치솟는 분노로 
당기고 발로 차고 끌어 보고 밀어 본 적 있습니다
 
아직도 나부끼고 싶어 하는 0.5층의 시계추
싱싱한 야채를 장바구니에 가득 담고
넘실넘실 계단을 오르내린 적 있습니다
0.5층은 식지 않은 질화로
삶의 끈을 붙들어 매고 있는 연둣빛 실타래
 
소수점 시간의 변주는 기억에서 잊히지 않는 저녁 이슬
낮은 음으로 조그맣게 노래하는 0.5층
시든 풀꽃처럼 기울어진 적 있는
다시금 퍼 올리고 싶은 별 같은 나날
바람에 머뭇거리는 계절의 어리광입니다
 
기다려 봐야 무성해지는 둥근달
생을 따스하게 당겨 주는
떠 있는 소수점의 0.5층
얼룩은 말갛도록 씻고 씻어 햇살에 널어 고이 말리고
아직도 생은 시냇물처럼 흐르고 싶어 하는
 

*메트로놈 : 음악의 빠르기를 재는 기구

 
 
ㅡ2015년 제1회 매일신문 시니어 문학상 시 특선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