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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글

12. 당신의 그림자가 울고있다/로버스트 A. 존슨 지음-파우스트와 메피스토펠레스의 부활

by 김선자 2024. 4. 15.

파우스트와 메피스토펠레스의 부활

 
 

《파우스트》는 자아가 부활하기 위해서는 그림자도 동시에 부활해야 함을 역설한다.
 
그림자든 자아든 서로를 돌보지 않고서는 변형을 이룰 수 없다.
 
다른 사람이 우리를 향해 던지는 돌이나 화살을 피하듯 그림자 투사를 비껴가야 할 필요가 있는 반면, 의식적으로 타인의 그림자를 짊어짐으로써 더 큰 선을 행하는 경우가 있다. 그림자 투사가 일어날 때 그냥 내버려두는 경우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잘 보여주는 좋은 사례가 있다.
일본의 작은 어촌에서 한 여자아이가 임신을 했다. 마을 사름들은 이 소녀를 볼 때마다 아기 아버지가 누구인지 캐물었고 행실 나쁜 계집애라며 손가락질까지 해댔다. 이런 분노 섞인 비난을 견디다 못한 소녀가 어느 날 충격적인 고백을 했다. "아기 아버지는 바로 신부님이란 말예요!" 그러자 마을 주민들은 이 문제를 따지러 신부에게 몰려갔다. 그러나 신부가 보인 반응은 "아! 그랬어요"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이로부터 몇달이 지났다. 사람들은 이 성직자를 배척하며 눈도 마주치려 하지 않았다. 그때쯤 한동안 마을을 떠났던 청년이 돌아와 이 여자아이에게 청혼을 했다. 그제서야 아이의 아버지가 이 청년이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임신한 소녀는 청년을 보호하기 위해 거짓말을 꾸며낸 것이었다. 마을 주민들은 부랴부랴 성직자를 찾아가 사과를 했다. 그러자 신부는 똑같이 "아! 그래요"라는 반응을 보였을 뿐이었다.
이 이야기는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그림자를 투사하는 동안 인내하는 힘을 보여준다. 성직자는 침묵을 지킴으로써 마을 주민들의 그림자 투사에 대응했다. 상황에 저항하거나 거부하지 않는 것으로 그는 그들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도록 여지를 남겨주었다. 시간이 지나자 주민들은 후회했다. "왜 우리들은 그렇게 쉽게 여자아이의 말을 믿었을까? 왜 우리가 신부님을 공격하는 편에 섰지? 어떻게하면 우리 내면에 있는 걱정과 불편함을 대면할 수 있을까?"
이런 일은 우리 자신의 그림자를 합리적으로 잘 다루지 못하거나 우리 자신에게 보복하려 들 때 흔히 일어날 수 있다. 우리는 선물을 쉽게 주지만 선물 뒤에 숨어 있는 그림자로 모든 걸 망쳐버린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원수를 사랑하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이것은 우리 내면의 원수에게도 마찬가지다. 만일 우리 안의 그림자가 튀어나올 기회만 엿보고 있거나 불이 붙을 기회를 노리고 있을 때는 그것이 가능하지 않다. 우리가 내면에 있는 원수를 사랑할 수 있다면 바깥에 있는 원수도 사랑할 수 있다.
자아와 그림자가 만나는 문학작품의 백미로 단연 괴테의《파우스트Faust》를 들 수 있다. 주인공 파우스트는 창백한 얼굴과 왜소한 체구를 지닌 학자다. 그는 자아와 그림자의 간극이 삶을 지속할 수 없을 정도로 커져서 자살을 기도한다. 시소가 부러질 정도로 하중이 적재된 것이다.
이때 파우스트는 자신의 그림자인 악마 메피스토펠레스를 만나게 된다. 메피스토도 파우스트만큼이나 악마로서의 삶을 지속하기 힘든 상태에 놓여 있었다. 이 둘의 만남에 에너지가 고조되어 폭발 직전에까지 이른다. 그렇지만 둘은 폭발적인 에너지를 제어하며 오랫동안 대화를 나눈다. 그들의 생생한 대화는 둘 모두에게 자아와 그림자의 부활에 관한 최고의 가르침을 제공한다. 생명력이 소진된 파우스트는 마침내 구원을 받아 열정을 지닌 붉은 피의 소유자로 변모한다. 메피스토 역시 비도덕적인 삶에서 구원되어 사랑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찾는다.
서양전통 중에서 자아와 그림자의 통합을 묘사하는 가장 적절한 단어를 하나 꼽자면 단연 사랑이다(저자의 책,《변형Transformation{SanFrancisco HarperCollins.1991}》참조). 《파우스트》는 자아가 부활하려면 그림자의 부활도 동시에 이루어져야만 가능하다는 사실을 강렬하게 묘사한다. 그림자는 의식으로 통합되어감에 따라 점점 더 부드러워지고 유연해진다. 파우스트의 내면은 자신의 그림자인 메피스토를 받아들임으로써 채워진다. 파우스트는 메피스토를 만나서 온전해지고,메피스토는 파우스트를 만나서 전일성을 획득한다. 그림자든 자아든 한 쪽을 돌아보지 않는 상태에서 다른 쪽의 변형은 이루어질 수 없다.
그림자와 자아는 충돌을 통해 본래의 전일성을 되찾는다. 이는 분리된 천당과 지옥의 상처를 치유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림자의 또 다른 이름인 루시퍼는 원래 천사장이었다. 그는 종말이 다가오기 전까지 자신의 올바른 자리를 되찾아야 한다. 이 위대한 신화는 개인의 심리에도 적용된다. 여성이든 남성이든 자신의 그림자를 회복하여 우리가 거부했던 특질을 부활시키는 것이 우리 각자에게 주어진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