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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보고 엄마가 가르쳐 주셨다

by 김선자 2024. 12. 16.

나를 보고 엄마가 가르쳐주셨다.  

잘 모르고 벌레를 죽였을 때나
지나다가 죽어 있는
가엾은 동물을 보게 되면
‘대방광불화엄경’이라고 하라고.  
 다음에는 사람으로 태어나라며
기도해 주라고.
그게 어떤 비밀의 마법 주문이 아니라
그저 화엄경 경전의 이름이라는 걸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나는 아직도 엄마가 가르쳐 주신
그 비밀의 주문을 자주 외운다. 
 
대방광불화엄경.  
 
다음엔 꼭 사람으로 태어나
생을 충분히 즐기렴. 
 유치원에서 우리 아이들이 귀가할 때
자주 이용하는 작은 샛길이 있다.  
 풀이 많은 흙길이라
비가 오면 민달팽이 천지다.  
 
그러면 비 온 다음 날 일부러
일찍 밖으로 나가 산책을 하던
엄마 생각이 난다.  
 작은 나뭇가지를 들고
콘크리트 길바닥에 나와 있는
지렁이들을 하나하나 풀숲으로 옮겨주며
“너 거기 그러고 있으면 죽어” 하던 우리 엄마.  
세상 만물에 정답게 말을 걸던,
사랑 많은 우리 엄마. 
 
“엄마 이거 봐. 너무 귀여워.” 
 
오늘도 보슬비에 토실토실한
민달팽이가 난무하는 귀갓길.  
 큰아이는 길바닥에 떨어진 자두를 먹으러
모여든 민달팽이들을 보고 귀엽다고 웃었다. 
 
“밟으면 안 돼, 밟으면 안 돼!”를 외치며
한 발짝씩 내딛다가 결국은
달팽이가 너무 많아서 집에 갈 수가 없다고
엉엉 우는 둘째를 보고 웃음이 나왔다. 
 그래, 함부로 밟으면 안 돼.  
네 울음이 참 고맙다.
크고 힘센 사람은 그렇게
발밑을 주의하며 걸어야 하는 법이란다. 
 
나는 철학하는 엄마입니다 중에서 / 이진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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