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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수필-소설

생에 대한 각서 외 3편/이성복

by 김선자 2022. 10. 14.

생에 대한 각서 외 3편

 

이성복

 

 

  사람 한평생에 칠십 종이 넘는 벌레와 열 마리 이상의 거미를  삼킨다 한다 나도

떨고 있는 별 하나를 뱃속에 삼켰다 남들이 보면 부리 긴 새가 겁에 질린 무당벌레를

삼켰다 하리라 목 없는 무당개구리를 초록 물뱀이 삼켰다 하리라 하지만 나는 생쥐같

이 노란 어떤 것이 숙변의 뱃속에서 횟배를 앓게 한다 하리라 여러 날 굶은 생쥐가

미끄러운 짬밥통 속에서 엉덩방아 찧다가 끝내 날개를 얻었다 하리라

 

 

눈에 대한 각서

 

  자벌레가 파먹은 어떤 눈은 옹이 같다 눈물은 빗물처럼 밖에서 흘러든다 기어코 울려면

못 울 것도 없지만 고성능 양수기가 필요하리라 혹은 통닭집 광고 전단으로 꼬깃꼬깃 접은 눈

통닭집 전화번호와 가격표를 때 묻은 망막에 도배한 눈 아무것도 먹어보지 못했지만 마냥

토하고 싶은 눈, 그래도 처음엔 봄밤의 사과꽃 속으로 지는 달처럼 아름다운 무늬를 지녔으리라

지금은 딱딱한 딱지 앉은 배꼽 같은 눈, 그리운 탯줄 대신 빨간 고무호스를 달아줄까

 

 

노래에 대한 각서

 

  기억의 남쪽 바다 십자성과 야자수는 노래 속에 있다 진한 박하향과 망고향 흐르는 노래

하얀 조개껍질 같은 섬들 공벌레처럼 미끄러지는 통나무배들 그 뒤로, 수시로 끓는 납덩이 같

은 노래의 추억은 해저 화산처럼 폭발한다 진흙을 싸 발라 구운 원숭이 두개골처럼 이번 생

의 기억은 시퍼런 강물이 물어뜯는 북녘 다리처럼 발이 시리다

 

 

시에 대한 각서

 

  고독은 명절 다음 날의 적요한 햇빛, 부서진 연탄재와 삭은 탱자나무 가시. 고독은 녹슬어 헛도는

나사못, 거미줄에 남은 나방의 날개, 아파트 담장 아래 천천히 바람 빠지는 테니스 공, 고독은

깊이와 넓이, 크기와 무게가 없지만 크기와 무게, 깊이와 넓이 지닌 것들 바로 곁에 있다 종이

위에 한 손을 올려놓고  연필로 그리면 남는 공간, 손은 팔과 이어져 있기에. 그림은 닫히지 않는다

고독이 흘러드는 것도 그런 곳이다

 

 

 

-시집『래여애반다라』(문학과지성사,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