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시읽기

그렇게 몇 포기/오규원

by 김선자 2025. 4. 16.

그렇게 몇 포기

   
오규원

 
길이란 우리들 습관의 다른 이름

길에는 풀이 나지 않습니다
우리들 고정 관념에 향기 한 줌
나지 않듯 그렇게.

그러나 길에도 풀이 납니다
失手처럼
그렇게 몇 포기
모진 꿈처럼
그렇게 몇 포기.

그러나 길에는 풀이 납니다.
여기 한 포기
저기 한 포기
미친년처럼 그렇게 몇 포기

..............................

산으로 오르는 길이 녹음 짙어진 나무 그늘 속으로 숨더니 며칠 사이에 보이지 않습니다. 건너 쪽 산을 빠져 내려온 길이 구부러져 마을로 내려가는 모습 다정합니다.
   '길'이라는 말처럼 풍요로운 의미의 말도 없지요. 길 위에서 나서 길 위에서 죽는다는 말은 그래서 사실이기도 하고 상징이기도 한 말입니다. 우리가 아직 산천에 순응해 살던, 인류가 아직 '젊던 시절'의 부드러운 곡선 길의 호흡을 떠올려 봅니다. 발 딛기 편리한 지형을 따라서 많은 이들의 발자국들이 모여 형성된 것이지요.
   '길'은 원래 '풀'의 영토였습니다. 길에 '모진 꿈처럼' 돋은 풀은 '이 길은 원래 없던 것'이었다는 신호입니다. 습관 혹은 고정 관념의 포로들은 영영 새로운 길에 대해 모릅니다. 정치도, 과학도, 예술도 그러하지요.
   '여기' '저기' '한 포기'씩 돋은 풀은 풀의 입장에서는 지금 새로운 길을 개척하고 있는 중입니다. '미친년'이 아니라 개척자인 것입니다.

  장석남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