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기
좋은 시를 찾아서] 들밥/손준호시인
by 김선자
2025. 6. 2.
대구신문 <좋은 시를 찾아서 > 515 손준호 시인
[좋은 시를 찾아서]
들밥
손준호시인
들이 바쁘면 밥이 들로 갑니다
산비알 의성댁 마늘밭에 6인분요
단비에 땅이 몰캉해져 마늘 뽑기 좋겠어요
품앗이고 놉이고 일손 구하기 하늘의 별 따기죠
이 골짝엔 논밭이나 사람이나 다 가엽지요
들에 나서 들에 늙었는데 어디로 가겠어요
삼창식당은 재재바르게 새참을 준비합니다
밥이 오는 동안 들판은 두루미 목을 하고
허기진 뭉게구름 고봉으로 모여서는
엄마 런닝구 목선 같은 밭두렁을 내려다봅니다
배달 오토바이 봇도랑길 보릉보릉 얼비치면
그제야 목장갑을 벗고요
엉덩이 방석 허리춤 달고 밭머리 나와
흙신발로 그늘에 빙 둘러앉은 낡은 무릎들
파스 향이 마늘쪽처럼 알싸하게 피어납니다
◇손준호= 2021년 계간 ‘시산맥’ 등단. 시집 ‘어쩌자고 나는 자꾸자꾸’, ‘당신의 눈물도 강수량이 되겠습니까’, ‘빨간 티코 타잔 팬티’(시산맥사).대구문화재단 문학작품집 발간지원. 문학뉴스&시산맥 기후환경문학상, 가야문학상 수상.
<해설> 마늘이 추수되고 있는 한 농촌의 현상을 고스란히 객관적인 묘사와 시골스런 향토적 언사로 진술하고 있는 시로 읽힌다. 묘사 위에 간간 마늘맛처럼 매콤한 직관을 박아 넣음으로, 잘 익은 마늘장아찌 같은, 물 말은 맨밥과 함께 먹기 좋은 맛깔나는 시이다. “들이 바쁘면 밥이 들로 갑니다” 평범한 진술로 읽히지만, 의미는 깊고 “이 골짝엔 논밭이나 사람이나 다 가엽지요” 신세타령에 가까운 이런 진술은 현실의 반영이고 “파스 향이 마늘쪽처럼 알싸하게 피어납니다” 는 오랜 노동으로 성한 데 없는 마늘 농사를 짓는 나이 든 일꾼들의 고통까지 보여주는 리얼한 대목들은 한 때 민중시를 읽는 느낌이다. 상상이 아닌 생생한 현장이 시에서 측은지심에 상쇄되지 않는다면 시인의 더 큰 발전적 개가를 볼 수도 있겠다. -박윤배(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