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날
라이너 마리아 릴케
주여 때가 왔습니다. 지난 여름은 참으로 길었습니다.
해시계 위에 당신의 그림자를 얹으시고
들에다 많은 바람을 놓으십시오.
마지막 과실을 익게 하시고
이틀만 더 남국(南國)의 햇볕을 주시어
그들을 완성시켜, 마지막 단맛이
짙은 포도주 속에 스미게 하십시오.
지금 집이 없는 사람은 이제 집을 짓지 않습니다.
지금 고독한 사람은 이후로도 오래 고독하게 살아
잠자지 않고 읽고 그리고 긴 편지를 쓸 것입니다.
바람에 불려 나뭇잎이 날릴때, 불안스러이
이리저리 가로수 길을 헤맬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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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말하다 / 문 태준 시인
릴케는 "밤마다 무거운 대지가 / 모든 별들로부터 고독 속으로 떨어진다" 라고 가을을 노래했다. 여름의 폭우와 화로 같은 일광(日光)이 물러가고 가을이 찾아 왔을 때, 대기가 냉담해졌을 때, 잎사귀가 말라 가고 짙었던 나무 그늘이 엷어질때 읊조리게 되는 시가 릴케의 시이다.
릴케는 많은 글에서 "위대한 내면의 고독"을 즐길 것을 권했다. "고독은 단 하나 뿐이며, 그것은 위대하며 견뎌내기 쉽지 않지만, 우리가 맞이하는 밤 가운데 가장 조용한 시간에 자신의 내면으로 걸어 들어가 몇 시간이고 아무도 만나지 않는것, 바로 이러한 상태에 이를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언술했다. "고독을 버리고 아무하고나 값싼 유대감을 맺지 말고 우리의 심장의 가장 깊숙한 심실(心室)속"에 고독을 꽉 채우라고 권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