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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읽기

시인(詩人)의 빈소(殯所)에서/유안진

by 김선자 2023. 1. 31.

시인(詩人)의 빈소(殯所)에서

 

   유안진

 

 

모인 우리는 오늘 밤 하늘에 새별이 돋을 거라며

미소 환한 영정 앞에서 산문시와 시 잡지의 업적을

기리고 기리다가 저절로 추억으로 들어갔다

 

한참 전에 떠난 시인 권탱고와 이가린스키에 이어 정지루박 시인이라고

달려와 같이 한 이디스코, 오부르스, 유삼바, 신무드, 문막춤, 훌라초이, 유소시얼리스트 등등

시인들의 공인된 별명을 모르면 간첩이라던, 에피소드를 웃어가며 슬퍼했다

 

말당 서정주 선생님부터 정한막님 김남작님 유안율과 진달자 시인까지

대가 선배님들 끄트머리 끝 끝에 이어지는, 버르장머리 없이 어리광도 피우면서

시단 한 생애의 소득이라곤

왜인지도 모르게 얻어진 별명뿐이라고 울음을 울었다

그리고는 옷깃 여미어 별이 되신 선배님들마다

너무 겸손하여 스스로 빛내지 않아서

불타버리지 않는 밤하늘과 여기 우리 세상이 멀쩡하다고

 

나 또한 과학적 도덕적 철학적 문학적을 갈팡질팡하다가

드디어는 지극히 종교적이 되어 잔을 들어 스스로를 감사했다

()이 못되는 시의 다행을

지금껏 써온 나의 시() 나부랭이가

말씀이 될 수 없는 천만다행(千萬多幸)까지를.

 

 

          ⸺격월간 현대시학 2019 11-12월호

 

유안진 / 1941년 경북 안동 출생. 1967 현대문학 추천완료로 시 등단. 첫 시집 달하이후 봄비 한 주머니』 『다보탑을 줍다』 『거짓말로 참말하기』 『둥근 세모꼴』 『걸어서 에덴까지』 『숙맥노트. 산문집 세한도 가는 길』 『지란지교를 꿈꾸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