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詩人)의 빈소(殯所)에서
유안진
모인 우리는 오늘 밤 하늘에 새별이 돋을 거라며
미소 환한 영정 앞에서 산문시와 시 잡지의 업적을
기리고 기리다가 저절로 추억으로 들어갔다
한참 전에 떠난 시인 권탱고와 이가린스키에 이어 정지루박 시인이라고
달려와 같이 한 이디스코, 오부르스, 유삼바, 신무드, 문막춤, 훌라초이, 유소시얼리스트 등등
시인들의 공인된 별명을 모르면 간첩이라던, 에피소드를 웃어가며 슬퍼했다
말당 서정주 선생님부터 정한막님 김남작님 유안율과 진달자 시인까지
대가 선배님들 끄트머리 끝 끝에 이어지는, 버르장머리 없이 어리광도 피우면서
시단 한 생애의 소득이라곤
왜인지도 모르게 얻어진 별명뿐이라고 울음을 울었다
그리고는 옷깃 여미어 별이 되신 선배님들마다
너무 겸손하여 스스로 빛내지 않아서
불타버리지 않는 밤하늘과 여기 우리 세상이 멀쩡하다고
나 또한 과학적 도덕적 철학적 문학적…을 갈팡질팡하다가
드디어는 지극히 종교적이 되어 잔을 들어 스스로를 감사했다
신(神)이 못되는 시의 다행을
지금껏 써온 나의 시(詩) 나부랭이가
말씀이 될 수 없는 천만다행(千萬多幸)까지를.
⸺격월간 《현대시학》 2019년 11-12월호
유안진 / 1941년 경북 안동 출생. 1967년 《현대문학》 추천완료로 시 등단. 첫 시집 『달하』이후 『봄비 한 주머니』 『다보탑을 줍다』 『거짓말로 참말하기』 『둥근 세모꼴』 『걸어서 에덴까지』 『숙맥노트』등. 산문집 『세한도 가는 길』 『지란지교를 꿈꾸며』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