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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자의 시 2

그 해, 겨울 노래/김선자

by 김선자 2023. 4. 3.

그 해, 겨울 노래 

 

 

김선자

 

 

 

  후투티들은 오디나무 우듬지를 향하면서 보보보 보보보봅 노래를 불렀다 올려다 본 그곳에 조용히 서 있는 나무 화려한 후투티들이 부른 노래 알 수는 없어 그 무렵 무게 없이 나붓나붓 흰 눈이 나뭇가지를 감싸고 내리는 흰 눈 흰 눈을 향하여 팔을 젓는 후투티들의 빨간 파랑 검은색 깃털처럼 노래는 고요한 그 무엇이기를 바랐던 것이었는지도 나뭇가지에 바람이 잠시 머물다 갈 적마다 허우적거리던 지렁이 굼벵이 거미들은 죽은 척 꿈쩍도 않고 직박구리 둥지만 살핀다 낮게 더 낮게 내려가는 동화속의 유령들처럼 서툰 가수의 목쉰 성대처럼 그 겨울은 그렇게 시작되고 있었다 애절한 마음으로 후투티들의 노래를 주머니에 한 움큼 넣고 싶었다 흰 눈도 함께 여무지게 싸서 손 안 가득 쥐고 떠나가던 다섯 살 그 아이 뒷모습에 던져주고 싶었다 점점 쌓여가는 흰 눈 위에 훗훗훗 노래를 얹어 놓고 장식깃을 쫑긋 세우고 둥지로 떠나는 후투티들 따라나서는

 

  문을 열었다가 문을 닫는 이웃들 그 친절한 사람들에게 쪽지라도 전하고 싶어 영상에서 영하로 속보가 전해지는 뉴스에 귀를 기울일 동안 느릿느릿 땅을 뒤집고 들어가는 두꺼비 개구리 뱀 나그네들 외로워 보인다는 소식들 눈송이처럼 날아드는 멈추지 못하는 새들의 노래 굵직한 바리톤의 음색 하얀 음반을 가르는 코러스처럼 여린 음향을 가늘게 모으고 한 박자 두 박자 숲을 흔드는 북풍처럼 엔딩 가락으로 줄을 맞추는 천천히 목청을 가다듬는 새들의 움츠린 날개 청백색의 낮고 묵직한 화음 노래가 들리지 않고 점점 희미하게 자자들었다 나무 가지만 가늘게 떨릴 뿐 새들은 모두들 어디에 숨어버린 것인가 두 귀가 안 들린다고 말해 본 적은 없었는데 설마 무슨 기미라도 챈 것일까 알 수 없는 후투티들 보보보 보보보봅 거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