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오빠가 6.25 전쟁 학도병으로 지원하여 소식이 없자 어머니는 한숨과 시름으로 지내시더니 결국 병을 얻고 위암이 되었다. 오래 고생하셨지만 치료가 불가능하여 꽃이 피기 시작한 3월 어느 날, 기어이 우리 곁을 떠나시고 말았다.
수술이 잘못되어 오래 살지는 못한다고 생각은 했지만 수술 다음 날 새벽 그렇게 황망히 가실 줄은 예측 못했던 일이었다. 나는 그때 주검을 처음 보았다. 산자와 죽은 자의 헤어짐으로 느껴지지가 않았다. 어머니는 마치 주무시고 계신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슬프다기보다는 오히려 내게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를 생각하고 있을 만큼 차분했던 것 같다. 엄마의 죽음 앞에서 슬픔에 겨워 울고 있는 언니를 보면서 나는 오히려 어머니가 안 계셔도 남에게 부끄럽지 않게 살아야 한다는 굳은 각오와 다짐을 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왜 그런 갸륵한 생각을 했는지 알 수가 없다.
지금 회상해 보면 좀 어처구니가 없지만 10대의 나로서는 그러한 각오로 갑자기 맞이한 엄청난 별리를 다스리고 싶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아니면 너무 오랜 병간호로 지쳐 있었는지도. 그러나 살아가면서 두고두고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눈물을 흘렸다. 조용하고 수줍기만 했던 나는 순진하고 정직한 소녀였다. 무엇이든 아버지를 속이거나 형제들을 속이면 안 된다는 도덕심이 나를 지배했고 언제나 이 가족을 위해서는 희생을 해야 한다는 잔다르크적인 영웅심이 있었다. 그래, 나는 어쩌면 영웅적인 것에 의협심을 얹어서 스무 살 즈음을 보내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러한 생각은 나를 어떤 관념의 틀에 구겨 넣어서 꽃피고 있는 내안의 아름다운 소리들에 귀를 기울이지 않게도 했다. 나는 청춘이었고 예쁘게 피어나는 꿈 많던 소녀였고, 가슴속에서 소용돌이치는 젊음의 물살과 안에서 꽃송이가 툭툭 터지던 꽃다운 나이였다. 그것은 막을 수 없는 아름다운 날들의 합창이었는데 나는 젊은 날의 속삭임을 내면의 깊은 곳으로 보내 버리곤 했다.
뒤 돌아 보면 스무 살 즈음은 반짝거리는 햇살과 싱그러운 푸른 들판과 아름다운 전원을 생각나게 한다. 모든 날들이 그런 날인 듯 그리워진다. 나뭇잎 하나가 떨어져도, 손수건 한 장이 바람에 팔랑거려도, 허리를 잡고 까르르 까르르 웃던 시절, 소낙비가 오면 그냥 흠뻑 젖어도 보고, 눈이 내리는 날엔 흰 눈을 밟으며 아무데나 돌아다니던 때, 매일 친구에게 편지를 써서 주고받으면서도 만나면 도란도란 끝나지 않던 얘기들, 어떨 땐 한없이 여리다가도 불의라고 생각이 들면 주먹을 불끈 쥐어도 보고, 목소리도 높여 보던 그러한 시절이었다.
어머니가 없는 집안은 할 일이 너무 많았다. 돌아가시고 나서 했던 나의 각오는 살아가는 현실에서는 소용이 없었다. 몇 살 위의 언니랑 살림을 꾸려갔는데 공부와 집안 돕기의 병행은 내겐 무척 힘이 들었다. 혼자 계신 아버지를 보필해야하는 의무와 날개를 달고 날아오르고 싶은 꿈과의 끈질긴 방황과 암투는 쉬지 않고 나를 괴롭히고 이것이냐 저것이냐 하는 양가감정에 시달림을 받았다. 언니는 곧 결혼을 해야 하고 남동생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면 반드시 대학으로 진학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때부터 일기를 매일 열심히 쓰고 시 비슷한 글도 쓴 것 같다. 구석진 곳에 앉아서 부지런히 책을 읽고 공책에다 울분 비슷한 것들을, 막을 수 없는 달콤한 감정들도 쓰고 또 썼다.
스무 살이 되기 전부터 나는 이성의 관심과 시선을 받기 시작했다. 근데 왜 나는 그들을 냉랭한 눈과 마음으로 바라만 보았을까. 그것은 감정이란 절제를 해야 한다는 틀에 나 스스로 구겨 넣어져 갇힌 탓은 아니었을까. 아니면 아직 사랑이란 문을 열기엔 자신이 없었던 것일까.
스무 살은 이제 오지 않겠지만 나는 다시 한 번 복사꽃 같던 그 시절의 꽃밭으로 걸어 들어가고 싶은 미련이 생긴다. 가슴 울렁거리며 눈물겹게 생각나던 사람, 무엇이든지 이루고야 말 것 같던 패기, 펄펄 뛰던 혈기와 언제나 달콤하게 꿈꾸던 야망들이 그립다. 그 뜨겁던 가슴엔 어떤 수식어도 필요가 없었다. 오늘에 이르러 내 꿈속에 스무 살 시절이 나타난다면 나는 갇혀 있던 틀에서 얼른 빠져 나와 맘껏 자기의 마음을 표현하면서 사랑을 한번 구가해 보고 이루지 못한 꿈도 가꾸어 보고 싶은 마음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게 무엇이란 말인가. 부질없다는 서글픔도 몰려온다. 흘러간 것은 그대로 흐르게 해줘야 하지 않을까. 문득 중국의 여류작가 지셴린의 에세이집 ‘다 지나간다’에 있던 ‘지나가는 생의 옷자락을 놔줘라’의 구절이 떠오른다. 모두가 지나가는 세월이며 꿈같은 인생인 것이다.
청춘의 혼란기이던 스무 살을 거치면서 나는 태양의 밝음 앞에서 떳떳하고 반듯하게 걸어 온 발걸음에 자부심을 가지며 좌절과 시련과 번민조차도 슬픔에만 매달려 있게 하지 않고 잘 다스렸음을 스스로에게 감사한다.
지나간 스무 살에게 그리움의 손을 흔든다. 나의 스무 살이여!
청춘의 꽃밭/헤르만 헤세
나의 청춘은 꽃밭이리니 들에는 은빛 샘물이 솟아나고 동화처럼 고목들의 푸른 그늘에서 내 청춘의 불길을 식힌다.
지금도 불타는 길목을 헤멘다 청춘의 꽃밭은 문이 닫히고 방황하는 신세를 비웃듯이 담너머 장미가 고개를 끄덕인다.
시원스런 내 꽃밭의 이야기는 끊임없이 멀리 울려 퍼지지만 옛날보다 더 아름답게 들리는 그 소리에 나는 마음 깊게 귀를 기울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