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자의 시 322 익숙하다/김선자 익숙하다 김선자 더듬어 시집을머리맡에 두고주섬주섬 책갈피를 끼운다어둡다 밝다는일상에 젖은 습관촉각이 시각이 되면눈을 감아도 다 보인다어둠속에서도 익숙하다눈 중에 가장 또렷한 눈은두 손이다한쪽 눈이 보는 세상희. 노. 애. 락.인생의 종점을 향해걸음마 한다양보란 그런것이다 2024. 11. 9. 종/김선자 종 김선자 종은 가만히 서 있다종은 말없이 기다린다종에게로 가서 그를 때리자종은 좋아서 웃기 시작한다깔깔깔까르르르르우웅우웅우우웅 그 웃음노래가 되어 너울너울 춤추며산 넘고 물 건너 퍼져간다모진 매 맞으면서온몸이 멍들면서우리가 서로에게이프게한 상처는 잊게하는저 사랑의 종소리나는 너에게너는 나에게따스한 눈길 마주 보게 하는신의 손길 2024. 11. 9. 바람 부는 출렁다리/김선자 바람 부는 출렁다리 김선자 푸르른 바다는찰찰 넘치도록짭쪼롬한 해초 내음이 날린다 바람 부는 출렁다리곳곳에 노란 표지 팻말위험! 들어가지 마세요 굼틀굼틀 구부리고철썩철썩 두드리고바다는 꼬리를 살살 흔든다 부채살주상절리동백꽃 빨간색 너무 요염하다산호보다 아픈부채살에 묻어오는 바람 갈매기 날고날개에 굳은 생채기먼 곳에서 퍼덕인 얼굴이 붉다 삐죽삐죽 다리 뻗치고꼬리 이어 오는파도를 부친다밀어 부친다 남실대는 바다에정맥같은 숨결을 띄운다 2013. 4. 6. 토. 초고 8. 24. 수정 2024. 8. 21. 나는 졸병입니다/김선자 나는 졸병입니다 김선자 좁고 기다란 골목저녁마다 놀기가 좋았습니다밤이 올 때까지골목은 이이들의 놀이터가 되어뛰고 또 뛰고 또또 뛰고골목대장이 되기도 했지요골목이 휘어지고멍이 들고 피가 흐를 즈음아이들은 흩어져서 골목을 떠나갔습니다굴삭기가 골목에서신음 소리를 내고 도려내고 살가죽을 붙이기도 했지요다시 찾은 골목은그날의 일은 모두 잊었는지다른 모습으로 눈만 동그랗게 뜨고늘펀하게 누워있었습니다이제 뛸 수 없는 아이넓어진 길에 쉬지 않고 오고 가는 많은 자동차들 사람들 자전거들 바람들요리조리 피해야 하는진돌이* 하던 은행나무 둥치에 기대니 어디선가아이들 고함 소리가 들려 왔습니다붙잡힌 골목대장이 매 맞고 있을 동안어딘가에 숨었다가 이제 찾아온나는 졸병입니다 *진돌이 : 대장놀이 2024. 8. 14. 옛집 3/김선자 옛집 3 김선자 달이 훤히 밝으면군에 간 큰 오빠 살아 돌아오도록오늘 밤도 내 어머니우물가에 정화수 떠 놓고 빌어라 하실까 영영 소식 없는 아들 찾아먼 길 떠나신 내 어머니저 달 보고 두손 모아정성을 다하여 절해라 하실까옛집은 뭉클거리는 가슴 속에서 아파오는 그 무엇이다뜨거워지는 눈시울후두둑 떨어지는 눈물 밟으며내 어머니 나 몰래라도 오늘밤 왔다 가셨으면 2024. 8. 14. 머리카락/김선자 머리카락 김선자 하얀 쌀 밥 고봉으로 먹고 싶다던 글라라찔레꽃 하얗게 피는 계절에그 향기 몸 속 깊이 들이 마시며 말했지머리맡에서 울리던 베토벤의 운명교향곡딸아이 얼굴조차 기억하지 못한멍하던 눈 글라라네 머리는 흰 목화송이 같았어나풀대던 머리칼은 바람에 날려 보낸 텅 빈 약 봉지가 되고A병원 902호실에 몸 담고 있던 그 날의 기억들박박 밀어낸 머리칼 사이로 눈물되어 방울 방울 맺힌다병원의 긴 복도를 걸으며 몇 번이나 주저 앉던 글라라대장에 있던 박테리아는 머리로 올라가서네 골을 다 파먹고찔레꽃 대궁 씹듯이 쪽쪽 빨아 넘기고글라라 너는 이제하얀 빈 방이 되어갔지방은 빛으로 가득 채워져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은글라라 너의 숨소리떠나고 있는 너를 위로하여 주었네너는 슬그머니 내 손을 잡으며스무 살 때의 우.. 2024. 8. 14. 이전 1 2 3 4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