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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자의 시 311

나복실 아지매/김선자 나복실 아지매 김선자 전등불에 담배불 붙이려한 덩둘한 사람 도째비 이야기는 신명이 났네 시난고난한 일생 늘 아팠으니 이웃의 홀대와 손가락질 차가운 눈길 서방도 자식도 다 빼앗겼네 오례쌀 찐쌀 메뚜기볶음 미꾸라지국 동치미 손방은 아니었네 아리잠작한 나복실 아지매 평생 떠나 본적 없는 산촌마을 방 두 칸 툇마루 정지 딸린 너와집에서 살아온 아지매 좀 보소 수상해지는 거동 멧새처럼 재잘재잘 지저귀네 가만히 귀 기울여 들어보니 엄마 찾는 아기 젖 달라는 옹알이였네 연신 배실 배실 웃고 있는 저 사람 아지매요 지금 어드메 있능교 느즈막이 어매 젖이 그리도 먹고 싶나요 *덩둘하다 : 매우 둔하고 어리석다 *정지 : 부엌의 경상도 사투리 *아리잠작하다 : 키가 작고 얌전하며 어린 티가 있다 *도째비 : 도깨비의 경상.. 2024. 4. 15.
봄까치꽃/김선자 봄까치꽃 김선자 쑤욱쑥 흙 밀어 올리다가 쏙 고개 내미는 쑥 냉큼 올라와서 싱겁게 꽃 하나 피우고 머쓱하니 앉아 있는 냉이 돌나물 앙증스레 오돌오돌 돋고 있는 봄날 머위나물 의젓이 솟아나고 매화나무 둥치아래 매화향에 흠뻑 젖어 있는 큰개불알꽃이 작은 눈 깜짝이며 민망스레 쳐다본다 누구보다 일찍 봄소식 전하는 너 봄까치꽃이라 이름 바꾸어 부른다 햇살 주저앉은 툇마루 봄 하늘이 너무 맑고 푸르러 가을인가 흰 구름 동실 몽실 여름인가 따스한 햇살 곱디고운 내님인가 노곤히 취하다가 어이쿠! 시샘바람 자발없이 눈 모로 세우고 어머니 가슴 휘젓는 못난 자식처럼 한바탕 돌개바람 불어제낀다 땅기운 터져 물씬 풍기는 흙냄새 어찌 이리 좋아 울렁이는 이 가슴 어찌하면 좋아 2024. 4. 15.
이를 어쩌랴/김선자 이를 어쩌랴 김선자 숨기고 싶은 어제 벗어 던지고 잎 다 떨어져 앙상한 네 곁에 있고 싶다 더디게 올지라도 봄은 수줍게 온다 바람이 초록을 메고 찾아 온다 배불러 입맛없음도 안락한 이부자리도 편안한 쉼도 감추고 싶어진다 이를 어쩌랴 신문지 한 장 이불처럼 펼치고 세상을 덮으며, 뒷걸음질 하며 지하도 바닥에 생을 의지한 사람들 비비꼬이던 나날들 베틀에 얹어 놓고 날줄 씨줄로 엮어내지도 못한 메마른 마음이 떨고 있다 이를 어쩌랴, 나무야 벗고 벗어서 온 생애를 허물 벗듯이 껍질 채 벗어던진 나무, 너를 본다 바닥의 차가움이 얼음처럼 나를 덮쳐도 나의 죄 아님을, 다만 잠깐이라도 부끄러워했음을, 어쩌랴 나무야, 벗은 나무야 나의 미련한 사랑의 게으름이 뜨겁게 가슴을 누른다 걸음을 멈춘 사랑의 행보 다가가지도 .. 2024. 3. 16.
나는 괜찮다/김선자 나는 괜찮다 김선자 벌거벗은 나무야 감출 것도 없이 훌훌 맨몸이 된 너에게 손을 내민다 나의 나무야 손끝을 타고 올라오는 푸르른 이파리 감미롭던 수액 하얀 네 등어리 너머 다가오던 이름들 옹이마다 네 한숨이 서려있다 나는 괜찮다 옷벗은 나무야 그리웠다 그리웠다 혀끝에 맴도는 말 초록이 초록으로 초록이 되어 가면 초록이 되어주마 나의 나무야 2024. 3.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