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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자의 산문14

나무 향기 / 김선자 나무 향기 / 김선자 비가 온 뒤의 숲은 싱싱한 기운이 넘치고 각각의 나무에서 풍기는 냄새도 독특하다. 젖은 나무 잎을 밟을 때마다 잘박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이 나무들에서 각각의 향기가 다르게 맡아 지듯이 사람에게서도 나무나 꽃의 향기를 연상시키는 냄새나 향기가 느껴진다는 생각을 해 본다. 어떤 사람은 장미꽃을 떠올리게 하는데, 용모가 화려하여 마치 장미 향기가 물씬 퍼져 오는 것 같다. 장미는 꽃 중의 꽃이어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아 오고 있는데 화려한 꽃의 모양과 색과 향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가시가 있어 간혹 찔리기도 한다. 그 사람도 곁에 있으면 한 번씩 가시에 찔린 듯 따끔거리는 기분을 느끼게 한다. 그래서 피하고 싶고 되도록 안 만났으면 할 때가 많다. 향기보다 가시가 더 많은 사.. 2024. 6. 6.
이팝나무 하얀 꽃 / 김선자 이팝나무 하얀 꽃 / 김선자 길을 가다가 우연히 친구 자야를 만났다. 우리는 반가워하며 가까운 공원으로 향했다. 5월의 햇살은 부드러우면서도 제법 따가웠다. 친구 자야는 길을 가다가 주춤거리더니 "나는 한동안 조금은 미친 듯 살아온 것 같애." 하는 거였다. 나는 왜? 하는 눈길만 주고 입은 떼지 않았다. 오랜만에 만나서 그런지 조금은 생소한 기분이었다. 우리가 앉은 곳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공원 중앙에는 자그마한 광장이 있고 분수가 아름답게 솟구치고 있었다. 그 물줄기는 5월의 찬란한 햇빛에 반사되어 영롱한 색깔을 내뿜었다. 희게도 보이다가 옅은 분홍색으로 변하기도 했다. 분수 주위에는 사람들이 모여 앉아서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시원한 물줄기가 오르락내리락 하는 광경을 편안한 자세로 즐기고 있었다.. 2024. 6. 6.
[단상斷想]삶은 한 순간 / 김선자 [단상斷想]삶은 한 순간 / 김선자    며칠 전 세상을 떠난 친구 淑의 장례미사에 참석했다. 미사 시간 내내 나는 많은 눈물을 흘리고 소리죽여 울었다. 이젠 다정했던 친구를 볼 수 없다는 생각에 가슴은 미어지는 듯 했다. 신부님도 목이 메어 말씀이 간혹 중단되곤 하여서 참석한 사람들을 더 슬프게 했다. 미사를 마친 후 나는 장지에 가는 운구차에 올라탔다. 친구가 묻힐 곳은 군위 가톨릭 묘지였는데, 산은 골이 깊어 구비 구비 산허리를 돌고, 구름이 머물다 갈 것 같았다. 길을 따라 차는 천천히 가고 있었다. 가는 길목마다 그곳엔 또 다른 세상의 아파트촌이 있었다. 산허리를 한 구비 돌 때마다 보이는 풍경은 저 아래 세상과 비슷한 동네처럼 보였다. 친구가 분양한 단 한 평의 아파트 둘레에는 소나무의 송.. 2024. 6. 6.
꽃 그림, 그리고 서예 / 김선자 꽃 그림, 그리고 서예 / 김선자  1. 수년전 수채화 물감으로 민화풍(民畵風)의 꽃을 몇 장 그려 보았었다. 그 그림이 오늘 우연히 화첩 정리를 하다가 눈에 띄었다. 조그만 종이에 그린 소품이라 남에게 내 세울게 못되지만 나와 함께 시간을 나눈 것들이라 정겨운 마음이 들면서 마치 죽마지우를 본 듯 반가워진다.  그림을 그릴 때면 무슨 그림이든지 마음을 달래는데 좋고, 흐뭇한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좋았다. 먼저 구도를 잡고 스케치를 하고난 다음 색칠을 하는데, 색을 칠할 때는 조화를 생각해야 한다. 그 색이 주는 묘한 정감과 에너지와 서로 간에 밀치고 잡아당기는 힘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어떤 색은 한데 어우러지고 어떤 것은 배척한다. 그러면서도 아주 기묘한 배합을 이루며 합일하기도 한다. 이들 색은 자.. 2024. 6. 6.
아버지와 쇠똥 / 김선자 아버지와 쇠똥 / 김선자 햇볕이 유난이 쨍쨍하던 어느 여름날 오후, 낮잠이나 잘까 생각하고 있는데 아버지가 부르시더니 “야야 저 길에 가서 쇠똥 좀 주워오너라” 하시는 것이었다. 나는 깜짝 놀라서 “예? 뭐라꼬예.” 했더니 “소 똥 말이다” 하신다. “어데 쓰실라꼬예?” 나의 재차 물음에 “내가 쓸데가 있어 그런다.” 하신다. 아버지는 자상도 하시지만 엄격하셨기 때문에 거역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입을 쑥 내밀고 궁시렁 거리며 밀집모자를 푹 눌러 쓰고 운동화에 장갑을 끼고 자루를 메고 집게까지 들고 집을 나섰다. 날씨는 엄청 더웠다. 아랫마을로 향하는 길을 걸으면서 쇠똥을 찾기 시작했다. 소들은 걸어가면서 아무 때나 무시로 배설을 하고 한 번에 누는 양도 엄청났기 때문에 길에는 소가 냅다 갈긴 똥들.. 2024. 6. 6.
꽃은 피고 새가 울고ㅡ나의 스무 살 즈음 / 김선자 꽃은 피고 새가 울고 / 김선자ㅡ나의 스무 살 즈음 큰 오빠가 6.25 전쟁 학도병으로 지원하여 소식이 없자 어머니는 한숨과 시름으로 지내시더니 결국 병을 얻고 위암이 되었다. 오래 고생하셨지만 치료가 불가능하여 꽃이 피기 시작한 3월 어느 날, 기어이 우리 곁을 떠나시고 말았다. 수술이 잘못되어 오래 살지는 못한다고 생각은 했지만 수술 다음 날 새벽 그렇게 황망히 가실 줄은 예측 못했던 일이었다. 나는 그때 주검을 처음 보았다. 산자와 죽은 자의 헤어짐으로 느껴지지가 않았다. 어머니는 마치 주무시고 계신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슬프다기보다는 오히려 내게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를 생각하고 있을 만큼 차분했던 것 같다. 엄마의 죽음 앞에서 슬픔에 겨워 울고 있는 언니를 보면서 나는 오히려 어머니.. 2024. 6.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