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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자의 시 3

나는 졸병입니다/김선자

by 김선자 2024. 8. 14.

나는 졸병입니다

 

 김선자
 
 
좁고 기다란 골목
저녁마다 놀기가 좋았습니다
밤이 올 때까지
골목은 이이들의 놀이터가 되어
뛰고 또 뛰고 또또 뛰고
골목대장이 되기도 했지요
골목이 휘어지고
멍이 들고 피가 흐를 즈음
아이들은 흩어져서 골목을 떠나갔습니다
굴삭기가 골목에서
신음 소리를 내고
도려내고 살가죽을 붙이기도 했지요
다시 찾은 골목은
그날의 일은 모두 잊었는지
다른 모습으로 눈만 동그랗게 뜨고
늘펀하게 누워있었습니다
이제 뛸 수 없는 아이
넓어진 길에 쉬지 않고 오고 가는
많은 자동차들 사람들 자전거들 바람들
요리조리 피해야 하는
진돌이* 하던 은행나무 둥치에 기대니 어디선가
아이들 고함 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붙잡힌 골목대장이 매 맞고 있을 동안
어딘가에 숨었다가 이제 찾아온
나는 졸병입니다
 
*진돌이 : 대장놀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