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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자의 산문

숲속 작은집/김선자

by 김선자 2022. 11. 18.

숲속 작은집

 

김선자

 

 

   모과나무 가지에 집이 생겼다 지푸라기에 진흙을 발라 소박하게 지은 집 비바람 막아주는 지붕은 우거진 모과나무 이파리였다 그 집이 몹시 궁금하여 살금살금 다가가 조심스레 드려다 보았다 먹이 구하러 나갔는지 어미는 없고 하얀 알 넷이 둥지 속에 있었다 가지가 심하게 흔들리고 목덜미가 수상해 뒤돌아보니 언제 왔는지 어미가 나를 집어삼킬 듯 노려보고 있었다

 

   그날은 새벽이었다 찌찌찌 짹짹 요란한 소리에 잠이 깨어 모과나무에 가 보았다 아, 요런! 어미 없는 방에서 이불은 걷어 부치고 알에서 깬 새끼들 빨간 부리 흔들며 입은 짝짝 벌리고 벌거죽죽한 살갗 아직 날개도 덜 자란 벌거숭이들 엄마 기다리는 반짝이는 눈 경계할 줄 모르는 조그만 발갈퀴 이제 저 넓은 하늘이 내려와 둥지에 가득 담기고 있었다

 

   모과나무 숲이 고요했다 우람하던 둥치도 허전했다 잎은 누렇게 변하고 하나 둘 씩 열매도 툭 떨어졌다 집 한 채만 덩그렇게 남았다 그들이 다 떠난 텅 빈 집은 을씨년스러워 두고 볼 수가 없어 그 빈 집을 옮겨다 마루에 두었다 간혹 그 집에서는 숲에서 들리는 생명의 소리가 났다 바스락 찌찌찌 꼬무락 뽀그르르 뻘에 빠진 듯 집이 조금씩 흔들거렸다 처량한 소리도 났다

 

   그들이 숲속 작은집을 언제 떠났는지 어디로 갔는지 이웃도 누구도 아는 사람 없어 아무도 말해 주지도 않아 빈 둥지만 남은 썰렁한 날들 생각 없는 계절만 오고 갈 뿐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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