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그림, 그리고 서예 / 김선자
1.
수년전 수채화 물감으로 민화풍(民畵風)의 꽃을 몇 장 그려 보았었다. 그 그림이 오늘 우연히 화첩 정리를 하다가 눈에 띄었다. 조그만 종이에 그린 소품이라 남에게 내 세울게 못되지만 나와 함께 시간을 나눈 것들이라 정겨운 마음이 들면서 마치 죽마지우를 본 듯 반가워진다.
그림을 그릴 때면 무슨 그림이든지 마음을 달래는데 좋고, 흐뭇한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좋았다. 먼저 구도를 잡고 스케치를 하고난 다음 색칠을 하는데, 색을 칠할 때는 조화를 생각해야 한다. 그 색이 주는 묘한 정감과 에너지와 서로 간에 밀치고 잡아당기는 힘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어떤 색은 한데 어우러지고 어떤 것은 배척한다. 그러면서도 아주 기묘한 배합을 이루며 합일하기도 한다. 이들 색은 자기들끼리의 속성이 붓을 놀리는 사람과 잘 맞으면 균형잡힌 아름다운 색들이 만들어진다. 인간이 마음에 맞지 않으면 등을 돌리는 것과는 아주 다른 것이다. 특히 색과 색을 섞어 쓸 때는 저희들 끼리 몸을 녹이면서 자기들과 생판 다른 혼합색을 만들어 준다. 그러한 배합에서 그림은 더욱 돋보이는 모습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저 사람과 나는 색깔이 다르다고 말한다. 공동체 안에서도 색이 같은 사람끼리만 어울리려고 한다. 사람들은 자기와 다른 모양뿐만 아니라 배경, 성장, 학력 등, 그 중에서도 색이 다르다고 느끼면 어지간해서 화합을 이루어 내기가 어려운 것을 보았다. 그건 아마도 색으로 말하자면 보색 관계가 되기 때문일 것이다. 보색은 색상환에서 가까이 있지 않고 반대편에 있기 때문에 마치 마주 보면서 서로를 견제하고 있는 것처럼 생각 들게 한다. 그러나 이들 대비 되는 색은 함께 쓸 때 선명한 느낌을 준다.
청색과 주황색은 보색이다. 이들 색은 배타적이면서도 강렬한 인상을 주기 때문에 광고나 강조할 경우 잘 쓰이고 있다. 초록색과 빨강색도 보색관계다. 초록 저고리에 다홍치마는 여인이 곱게 단장할 때, 우리나라 전통의상에서는 시집가는 새색시에게 주로 입힌다. 녹의홍상(綠衣紅裳)이다. 만약 사람에게서 반대색은 어떨까.
나 때문에 다른 사람이 더 아름다워 보이고 다른 사람 때문에 나의 존재 가치가 더 드러나 보이면서 서로의 조화된 영향력이 드러난다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그러나 사람은 색과는 달리 서로 서로에게 잘 적응하고 화합을 이루려면 부단한 자기 수양이 필요할 것이라 생각한다. 불협화음이 자주 생길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2.
나는 오래전부터 서예에 입문하여 먹물과 붓을 벗 삼고 있었다.
서예는 문자를 소재로 화선지에 먹물로 점과 선을 표현하는 평면적인 조형예술이다. 다른 예술에 비해 외형적인 아름다움의 추구보다는 내면적 정서와 정신의 숭고함을 추구하고, 풍격과 운치를 소중하게 여기며, 정중동(靜中動)의 조화와 운율미(韻律美)를 강조하며 창조해내는 예술이다.
언제 부터인가 나는 서예가 ‘예(藝)'만 있는 것이 아니라 '도(道)'가 되어야 한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날이 가고 달이 가고, 붓을 들고 글씨를 쓰려고 할 때마다, 두고두고 뼈저리게 느낀 사실이다. 흑(黑) 과 백(白)의 공간을 어떻게 배치하는가는 참으로 어렵게 느껴졌다. 기품있는 정신이 깃들고 고아한 서품이 만들어 져야 훌륭한 작품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여백과 충만함, 그리고 풍과 기백이 여유 있게 따라야 하는 것이다. 한번 흘러가면 돌이킬 수 없는 세월, 지나가면 다시 살 수 없는 인생처럼 일회성은 서예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라 할 것이다. 한번 그은 선은 다시 덧칠할 수 없고, 생명의 호흡처럼 끊어져서도 안되기 때문에, 점 하나에 선 하나에 쉼 없는 생명성을 불어 넣어야 한다.
나는 힘든 세월이었지만 노력도 많이 했다. 조용한 시간이나 아님 번거러운 시간일 때라도 먹물에서 풍겨 오는 묵향은 나의 정신을 맑고 고요하게 해 주었다. 흰 화선지를 앞에 놓고 먹물을 묻혀서 붓을 종이에 가져가면 떨림과 희열이 함께 일어났다.
쓰고 또 쓰고, 시간이 갈수록 지필묵이 나의 반려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다.
몇 년 전 교통사고로 손가락이 하나 부러지고 신경에 탈이 났다.
그것도 하필 오른 손이다. 부러진 손가락은 병원에 가서 수술을 했지만 너무 늦게 하게 되어 구부러진 상태가 되고 말았다. 도대체 손에 힘이 안 들어간다. 물건을 쥐어도 자꾸 밑으로 떨어졌다. 붓을 쥔 손이 힘이 없으니까 중봉이 될 리도 없고 필력도 없어서 붓이 먹물을 이기지 못하고 화선지에 구부렁거리는 선만 그려지는 것 같았다. 손가락이 성할 때는 글씨가 잘 안된다고, 치졸하다고, 움츠리며 투덜대다가 막상 손가락의 부자유 때문에 생각대로 글씨가 잘 안 되니까 나는 남몰래 눈물을 엄청 쏟아냈다. 한없이 서글퍼져서 견딜 수가 없었다. 몇 년이 흐르고 마음을 비우고 나니 차라리 마음이 편안해졌다. 비움도 서예를 공부하면서 터득한 아름다운 예술이라고 생각하면서.
3.
지금 나는 이 꽃그림을 그리던 날을 회상해 본다. 해질 무렵이었다. 밖에는 어스름한 어둠이 깔리고 방안은 가구들의 실루엣도 어렴풋해졌다. 밤이 오고 있었지만 개의치 않고 나는 책상에 앉아서 불을 밝히고 그릴 도구들을 준비한다. 그리고 파레트를 열고 물통을 준비하고 알맞은 붓을 갖다 놓고 용지를 꺼낸다. 그러고 나서는 붓을 들고 색을 찾아서 칠하고 조화와 어울림을 종이 위에 만들어 간다. 어느새 마음이 맑아지면서 고요한 가운데 고요함 속으로 차츰차츰 빠져 들어가는 것이다.
행복한 시간이 천천히 흘러간다. 마치 조용한 강물에 몸이 잠긴 것처럼 아늑해 진다. 깊은 사색의 경지로 이끌리는 것이다.
꽃 그림은 그렇게 탄생하고 나는 그 모습을 보면서 만족해한다. 색들은 제 자리를 지키며 서로에게 융화한다. 색이 하모니를 이루며 그림이 생겨난다. 마치 내 자식 한명이 탄생한 듯이 기뻐하며 그림을 다독거리고 소중하게 보관한다. 오늘 나는 이 화첩을 드려다 보면서 내가 살아온 삶의 흔적들도, 꽃 그림처럼 색을 칠하고 다듬어서 아름다운 그림을 만들어야 하겠다고 다짐해 보는 것이다.
2010. 12.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