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팝나무 하얀 꽃 / 김선자
길을 가다가 우연히 친구 자야를 만났다. 우리는 반가워하며 가까운 공원으로 향했다. 5월의 햇살은 부드러우면서도 제법 따가웠다. 친구 자야는 길을 가다가 주춤거리더니
"나는 한동안 조금은 미친 듯 살아온 것 같애."
하는 거였다. 나는 왜? 하는 눈길만 주고 입은 떼지 않았다. 오랜만에 만나서 그런지 조금은 생소한 기분이었다.
우리가 앉은 곳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공원 중앙에는 자그마한 광장이 있고 분수가 아름답게 솟구치고 있었다. 그 물줄기는 5월의 찬란한 햇빛에 반사되어 영롱한 색깔을 내뿜었다. 희게도 보이다가 옅은 분홍색으로 변하기도 했다. 분수 주위에는 사람들이 모여 앉아서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시원한 물줄기가 오르락내리락 하는 광경을 편안한 자세로 즐기고 있었다. 5월의 신록은 새롭고 눈부셨다. 수종에 따라 신록의 빛깔도 달라서 순전한 녹두색도 있고 갈색이나 보라색이 도는 연녹색도 있다. 짙은 초록이 되기 전의 나뭇잎들은 아가의 몽실몽실한 손처럼 예쁘게 보이는 것도 있었다. 널찍한 잔디밭의 부드러운 파란 싹은 융단처럼 보이고 여기저기 잘 조성된 수목들이 품어 내는 미묘한 신록의 조화는 한 폭의 수채화를 보는 기분이었다.
"나는 작가가 되고 싶었지. 누구에게나 인정을 받는 사람으로 말이야. 그래서 자주 도서관에 가서 독서를 하고 좋은 책은 사서 읽기도 하고 열심히 쓰기도 하면서 지냈어."
"그래? 정말 부지런하고 보람 있게 지냈구나. 부럽다."
내 눈앞에는 친구가 밤낮으로 읽었을 시집과 소설책, 월간지, 인문서적들이 수북이 쌓여 있는 게 보이는 듯 했다. 거실의 창문은 약간 열어두고 참새 떼가 앉아 있는 나뭇가지나 담쟁이넝쿨, 저 멀리로 흘러가는 흰 구름을 가끔 쳐다보면서 책을 읽고 있는 친구의 모습이 상상 되었다. 봄에는 매화 향기가 창가에 머물고 가을이 되면 노란 은행나무 잎이 친구의 방을 엿보기도 했을 것이다. 친구네 집은 아파트가 아니고 한옥이었다. 아담하고 고풍스러웠는데 나는 한동안 친구 집이 좋아서 자주 찾아 가곤했다. 내가 자야를 알고 친하게 지낸 것은 오래되었다. 한 동네에서 자라고 같은 학교를 다닌 우리는 한마디로 죽마고우였다. 결혼을 하고 나이가 든 후로도 모임을 가지고 계속 만났다. 그러나 어쩐 일로 근래엔 모임에 자주 빠지곤 했다.
꽃향기가 물씬거리는 화원 옆을 지나 자연스럽게 발길이 닿은 곳이 산책로였다. 산책로는 나무들이 울창하게 우거진 숲길이었다. 송진 냄새가 풍기는 소나무에서 솔방울이 또르르 굴러 떨어지기도 하고 젖빛이 도는 아카시아가 무더기로 드리워져 있었다. 배롱나무, 이팝나무, 은행나무, 팽나무, 단풍나무 등 여러 수종의 나무들과 침엽수들이 서로 벌어져서 만나기도하고 하늘을 향해 뻗어 있기도 했다. 나는 조용히 걷고 있는 친구를 간간이 곁눈으로 쳐다보면서 쉬엄쉬엄 걸었다.
갑자기 우리 곁을 사십대쯤 되어 보이는 여자 두 사람이 쏜살같이 지나갔다. 팔을 가슴께까지 올리고 힘차게 흔들면서 마치 행진 하듯이 걸어갔다. 그 광경은 자야의 책 읽는 모습을 연상시켰다. 아마도 저 사람들처럼 눈에다 힘을 주고 눈동자는 이리저리로 굴리면서 책속을 걸어가듯 했으리라. 시계추처럼 좌우로 흔들리는 두 눈, 마음은 그저 한시라도 바삐 좋은 글을 쓰고 싶은 욕구로 가득차서 책장을 넘기고, 읽고, 훑고 하다가 다음 페이지로 옮겨가고, 그 책은 덮고 또 다른 책으로 바꾸고 했을 것이다. 읽은 책은 점점 쌓여가고 그녀의 지문은 종이 곳곳에 스며들어 수많은 자국을 남겼을 것이다.
제 각각의 생각에 골똘하여 자야와 나는 한마디의 말도 없이 천천히 걷기만 했다. 숲속은 깊은 바다 속 같이 느껴지고 청량하면서도 먹먹했다. 고요한 산책이라서 그런지 『월든』의 작가 소로가 떠올랐다. 매사추세츠 주 콩코드 숲 작은 호숫가에서 오두막을 짓고 2년 몇 개월을 살면서, 자급자족을 하고 노동을 하고, 단순한 생활 속에서 나날을 길어 올린 것들을 기록한 그 책을 읽은 후 나는 깊은 감명을 받았다. 소로의 이 책은 시적이고 철학적이며 생태학적인 성찰을 담고 있다고 소개되었다. 좀 느리게 산다는 것,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살 수는 없을까를 깊이 느끼게 하는 책이었다. 이런 구절이 있었다.
시간은 내가 낚시질하는 강일뿐이다.
나는 그 강에서 목을 축인다. 그러나 그 강물을 마실 때 모래 바닥을 보며 강이 얼마나 깊은지 가늠한다.
시간은 얕은 곳에서 힘없이 흘러 덧없이 멀어지지만, 영원은 남는다.
주석달린『월든』중에서
바쁘게 달려서 빨리 어딘가에 도달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 아무리 가져도 허기가 나는 삶, 짧아진 시야는 더 이상 앞날을 볼 수 없는 사람으로 만들고 조잡한 것들을 진리인양 찾아 헤매기도 한다. 늘 초조하고 무언가에 쫓기면서 살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 친구의 요즘 생활도 그러했는지 알 수가 없다. 그 무언가는 도대체 무엇일까, 정체를 알 수 없는 두려움과 자신에 대한 억압, 무엇이라도 꼭 이루어야할 것 같은 강박에 시달리고, 삶에서 들어온 문이 있으면 나가는 문도 분명히 있음을 알지 못하여 헐렁하게 살아가도 되는 나날을 촘촘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면 지금의 내 모습이 아닌가. 오늘의 자야를 보면서 거울에 비친 나 자신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씁쓸해지는 것이다. 알 수 없는 불안이 검은 그림자처럼 다가올 때면 안절부절 할 때도 자주 있다. 감당하기 어려운 지식의 욕구, 외로움, 노후에 오는 고독 같은 것, 세월이 급물살을 타고 흐르고 있음을 느끼면 안타까워지는 것들이다.
옆으로 눈을 돌리니 이팝나무의 하얀 꽃이 마치 흰 쌀밥을 부어 놓은 것 같이 탐스러웠다. 가시나무 그늘에 숨어 있는 희고 여린 애기나리의 꽃잎, 연한 보라색의 구슬봉이도 보인다. 맥문동, 수선화도 예쁘게 피어 있다. 약간 고개를 숙이고 눈은 아래로 내려 뜬 채 자야는 무언가를 곰곰 생각는 모습이었다.
발자국을 뗄 때마다 자야가 책장을 넘기는 모습이 눈에 자꾸 어른거렸다. 아주 재빠르게 행간을 지나가는 그녀의 시선, 글자들은 이제 그녀의 눈을 지나고 골목을 지나 집으로 가듯이 뇌의 뉴런과 시냅스로 전달되고 글이 쌓이는 머릿속 집의 창고에 다다를 것이다. 그들은 거기서 또 나누어져 각각의 방들로 들어가서 자기자리에 앉을 것이다. 그렇게 습독된 글자나 문장들은 조용한 숲길을 거닐 때든지, 노을이 지는 언덕에서 하루를 조망하는 시간에, 감명 깊은 그림을 볼 때, 아름다운 음악을 들을 때, 우울하거나 달콤한 사랑에 빠져 있을 때라든가 이별이라는 커다란 상실감으로 더 이상 살기 싫다는 생각에 억눌려서 인생이 허무해지는 때마저도 우르릉거리며 밖으로 뛰어 나와서 시인이나 작가를 만드는데 일조를 할 것이다.
한 동안 잠잠하던 자야가 말했다.
"무엇이든 서두르면 안 되는 거였어. 바쁠수록 천천히 서두르라는 격언이 생각난다." 하더니,
“뛰지 마십시오, 너무 서두르지 마십시오, 당신이 돌아가야 할 곳은 다만 당신 자신입니다, 라는 글귀가 생각났어. 어딘가에서 읽은 글귀야.”하고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작가가 빨리 되고 싶었다. 글만 쓰고 읽으면 되는 줄 알았다. 그러나 그건 엄청난 착각이었다는 말이었다.
"그건 짧은 장대로 구름을 잡으려고 쫓아다니는 철부지 아이와 같은 행동이었어."
"물론 시간이 가고 어느 정도 공부를 많이 하고 나면 저절로 좋은 글을 쓸 수야 있겠지만…"
"그러나 그것도 지금은 뜬구름잡기만큼 어려운 일이라는 걸 알았다." 고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바람이 불어와 두 시간 정도를 걸어서 땀이 밴 꿉꿉한 옷이 마르는지 시원해졌다. 자야는 그래도 자기가 잠시나마 미쳐 있었던 게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며, 그렇지 않으면 그렇게 많은 책을 언제 다 읽었겠느냐는 것이었다. 어차피 독서는 글 쓰는 이의 필수고, 기본자산이고, 훌륭한 이들의 양서와 고전을 읽고 풍부한 삶과 자질을 쌓아 가지 않는다면, 그 역시 좋은 작가가 될 수 없을 거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듯 말하면서 엷게 웃었다.
어느 새 숲은 끝나고 공원을 빠져 나오니 해가 뉘엿뉘엿 지고 땅거미가 내리고 있었다. 나는 자야의 옆얼굴을 새삼 오랫동안 쳐다보았다. 이 친구와 오랜 날들을 변함없는 우정으로 만나고 있는 게 오늘만큼 자랑스러운 적은 없었다. 그리고 그녀의 머릿속에 갈무리된 문장과 글자들이 줄을 지어 걸어 나와서 하얀 종이위에 놓여지고, 그것들이 소설이 되고, 시가 되고, 펜을 닳게 하고, 글의 향기가 아우성을 치면서 멀리 멀리 날아간다면 자야는 문학이 꽃피는 문 앞에 우뚝 서서 웃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웃음은 책들이 된 나무, 숲속 저 멀리로 번져 가고 있으리라.
그럴 때 나는 그녀의 책을 읽는 열렬한 독자가 되리라. 미래는 꿈꾸는 자의 몫이고 무지개이며 독자가 없는 작가는 외롭지 않을까.
하늘은 잿빛으로 어두워지고 숲은 검게 변하여 조용하게 머물러 있었다. 까치 한 마리가 어둑한 하늘을 가로질러 내일 아침 누구네 집에 반가운 소식을 전하려는지 숲을 향해 날아가고, 역시 숲은 장엄하고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그리고 수풀사이로 수많은 책들이 걸려서 너풀거리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2012. 9. 4. 화.
김선자의 산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