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앉은뱅이저울/함민복 2011년 제6회 윤동주 문학상 앉은뱅이저울 함민복 물고기 잡는 집에서 버려진 저울 하나를 얻어왔다 저울도 자신의 무게를 달아보고 싶지 않았을까 양 옆구리 삭은 저울을 뒤집는다 삼 점 칠 킬로그램 무한천공 우주의 무게는 0이더니 거뜬히 저울판에 지구를 담은 네 무게가 지구의 무게냐 뱃장 크다 지구에 대한 이해 담백하다 몸집 커 토막 낸 물고기 달 때보다 한 마을 바지락들 단체로 달 때 더 서러웠더냐 목숨의 증발 비린내의 처소 검사필증, 정밀계기 딱지 붙은 기계밀정아 생명을 파는 자와 사는 자 시선의 무게에서도 비린내가 계량되더냐 어머, 저 물고기는 물속에서 부레 속에 공기를 품고 그 공기를 제 무게를 달더니 이제 공기 속에 제 몸을 담고 공기 무게를 달아보네 봐요 , 물이 좀 갔잖아요 푸덕거림 버둥댐 오.. 2022. 10. 9.
첫 눈 오는 날/곽재구 첫 눈 오는 날 곽재구 사랑하는 마음이 깊어지면 하늘의 별을 몇 섬이고 따올 수 있지 노래하는 마음이 깊어지면 새들이 꾸는 겨울꿈 같은 건 신비하지도 않아 첫 눈 오는 날 당산 전철역 오르는 계단 위에 서서 하늘을 바라보는 사람들 가슴속에 촛불 하나씩 켜들고 허공 속으로 지친 발걸음 옮기는 사람들 사랑하는 마음이 깊어지면 다닥다닥 뒤엉킨 이웃들의 슬픔 새로 순금빛 강물 하나 흐른다네 노래하는 마음이 깊어지면 이 세상 모든 고통의 알몸들이 사과꽃 향기를 날린다네 2022. 10. 9.
고통 /헤르만 헤세 고통 헤르만 헤세 고통은 우리를 왜소하게 만드는 명인. 우리를 태워서 더욱 가난하게 만들고 우리를 자신의 삶으로부터 갈라놓고 우리를 에워싸고 활활 타올라 혼자이게 만드는 불. 지혜와 사랑이 작아진다 위로와 희망도 엷어지고 덧없어진다 고통은 거칠게 시샘하며 우리를 사랑한다 우리는 녹아 가며 존재가 된다. 2022. 10. 9.
그 섬 그섬 김선자 비가 내리면 그 섬에 한 번 가볼까 합니다 그 섬에 내리는 빗소리 아름다운 종소리 같이 들리고 종소리에 맞추어 물고기들 춤을 춘다고 해서 그대에게 그 소식 들려 줄까 해서요 바다에 떨어지는 빗방울들 하나씩 주워 모아 영롱한 바늘로 구슬처럼 실에 꿰어지면 아지랑이 같은 그 섬에 보물처럼 숨겨 두고 흔들어 향기가 나면 하늘 빛에 취해서 울어 보기도 하고 비는 가녀린 꽃잎들을 간지럽히다가 나무들 잎새에 물방울 되어 조용히 머물다가 도르르도르르 굴러내리는 은구슬이 되다가 재재재 짹짹 지저귀고 있는 새들 어루만지다가 빗 소리 날개 밑으로 흠뻑 적셔 들면 새들을 데리고 그 섬을 한바퀴 휘돌아 오기도 하고 비가 내리는 날 그 섬으로 간다면 그대 생각은 잠시 뒤로 하고 하루 종일 물장구만 치다가 돌아 올까.. 2022. 10.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