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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글

18. 당신의 그림자가 울고있다/로버스트 A. 존슨 지음-사랑에 빠진다는 심리적 의미 1

by 김선자 2024. 4. 15.

사랑에 빠진다는 심리적 의미

 

 

결혼은 대부분 투사에서 비롯된다. 그래서 반드시 환상이 깨지는 시기를 겪는다.

이럴 때 배우자는 맨 처음 투사 때와 전혀 다른 사람이 된다.

사랑에 빠진다는 말은 곧 투사를 한다는 말이다. 특히 사랑하는 사람에게 자신의 그림자 중 최고의 부분인 신의 이미지를, 남신이든 여신이든 상관없이 투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이는 모든 숭고함과 신성함의 소유자가 된다.

우리는 흔히 사랑하는 사람에 관해 이야기 할 때 감동의 언어로 치장을 하는데, 이때 사용하는 단어는 대개 신성을 묘사할 때 쓰는 것들이다. 이런 체험은 극단적으로 편향된 것으로 시소의 오른쪽에서만 벌어진다. 따라서 이 경험은 시소의 반대쪽에 그림자를 키우게 된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하는 수많은 경험 중에 사랑하다가 돌아섰을 때보다 더 씁쓸한 것은 없다고 느끼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서양에서 대부분의 결혼은 투사에서 비롯된다. 그래서 반드시 환상이 깨지는 시기를 겪는다. 다행히 눈꺼풀에 씌인 것이 벗겨지면 우리는 훨씬 인간적으로 변한다. 인간적으로 변한다는 말은 결혼생활이 훨씬 견고한 실체를 기반으로 지속된다는 뜻이다. 이럴때 배우자는 맨 처음 투사단계 때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사랑에 빠진 상태는 신에 가까워지는 체험인 반면, 견고한 실체를 바탕으로 지속되는 사랑은 평범한 우리의 일상을 높이 끌어올린다.

우리가 인식하기는 힘들지만 사랑에 빠져 있는 동안은 사랑하는 사람의 인간성을 빼앗게 된다. 누군가와 사랑에 빠짐으로써 그 상대를 본의 아니게 모욕하게 되는 것이다. 이는 우리가 상대를 진정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신을 투사하여 바라보기 때문에 일어난다. 두 사람이 서로 사랑한다면 한동안은 구름위를 걷게 되고 말 그대로 영원할 것 같은 행복에 잠기게 된다. 이 신적인 체험은 두 사람을 위한 시간이 다 소비될 때까지 지속된다. 그러다 어느날 이들이 땅으로 되돌아올 때는 현실적으로 서로를 바라봐야 한다. 이때부터 비로소 성숙한 사랑의 가능성이 열린다. 짝사랑하고 있다면 그 상대에게 다음과 같이 말해봄직하다. "만일 당신이 나에게서 당신 자신의 이미지를 보는 대신에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바라본다면 우리 사이에 뭔가 이루어질 수도 있을 텐데"라고 말이다.

제임스 터버James Thurbe가 그린 만화는 결혼생활에서 일어나는 환상을 잘 보여준다. 중년에 이른 부부가 서로 상대방을 쏘아보며 말한다. "도대체 누가 우리 결혼에서 마력을 다 가져갔어?"라고 말이다. 정말 마력은 사라졌다. 사랑에 빠진 남녀의 투사가 끝날 무렵 다른 쪽의 실체가 등장하는데, 이 시기를 잘 견뎌낸다면 비로소 인간적인 사랑을 할수 있다. 인간의 사랑은 신의 사랑보다는 덜 짜릿하지만 훨씬 안정감을 준다.

결혼생활에서 그림자는 굉장히 중요하다. 결혼생활을 발전시키느냐 이혼으로 끝내느냐는 그림자를 얼마나 의식하고 있는가에 달렸다. 사랑에 빠졌을 때 우리는 상대방이나 우리 자신에게서 괴롭고, 혐오스럽고, 심지어 절대 참을 수 없는 것들도 발견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어버린다. 그렇지만 이런 면들을 정확히 마주해야 가장 큰 성장을 할 수 있다.

최근 나는 아주 현명한 부부에 관한 일화를 하나 들었다. 결혼식 전날 밤, 결혼의 그림자를 청하는 특별한 예식을 마련한 것이다. 이 예식에서 그들은 결혼서약 대신 '그림자 서약'을 했다. 신랑이 먼저 말했다. "나는 당신에게 정체성을 부여할 것이며 세상은 당신을 나의 연장으로 볼 것입니다." 이에 신부가 답하기를 "나는 당신에게 순종하고 친절하겠지만 뒤에서 내가 모든 것을 조종할 것이니 만일 우리 사이가 나빠진다면 돈과 집은 내가 가질 거예요." 이들은 결혼생활을 하는 동안 반드시 이런 그림자들이 등장할 것이라는 사실을 미리 인식하며 서로의 결점을 인정하고 마음껏 웃으면서 축배를 들었다. 이 부부는 그림자가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고, 그림자의 정체를 표면으로 드러내었기 때문에 결혼생활에서 필연적으로 겪게 될 '그림자 게임'에서 절대다수의 사람들보다 유리한 위치를 선점할 수 있었다.

자신의 연인이나 배우자에게 신의 이미지를 투사하는 것은 자신의 어두운 면인 두려움이나 근심거리를 투사하는것만큼 위험하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이렇게 말한다. "당신이 내 창의력의 유일한 샘이 되고 나에게 신의 영감을 부여해주기를 원해. 부디 내 삶을 바꾸어줘." 과거에는 영적인 가르침으로 대하던 내용을 지금은 사랑하는 사람이 대신해주길 기대한다. 우리 자신을 새롭게 하고, 죄를 사하고, 영혼을 구원하는 역할을 배우자가 해주길 바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