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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글

19. 당신의 그림자가 울고있다/로버스트 A. 존슨 지음-사랑에 빠진다는 심리적 의미 2

by 김선자 2024. 4. 15.

 

사랑에 빠진다는 심리적 의미 2

 

 

서구의 집단 무의식에 로맨티시즘의 개념이 맨 처음 등장한 때는 12세기이다. 상대방에게서 신성을 발견한 12세기는 분명 인류에 뭔가 대단한 일이 일어난 해였다. 동양에서는 이런 일이 훨씬 오래 전부터 나타났는데 그것은 영적 스승과 제자 사이에서만 제한적으로 허용되었다. 그들은 이 체험의 위대한 힘을 깨달았기에 이를 종교적인 삶에만 제한하고 일상의 관계에서는 금했다. 이러한 엄청난 힘을 감당하려면 그것을 담을 큰 그릇을 만드는 것이 현명하다. 하지만 일상의 인간관계는 이러한 신의 드라마를 살아낼 만큼 강한 인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

인류 역사에서 사랑에 빠지는 행위, 즉 낭만적 사랑에 관한 자질은 상대적으로 최근에 등장했다. 이러한 자질이 등장하면서 서구에서는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가장 숭고한 감정의 장이 마련되었다. 동시에 이전까지 몰랐던 가장 견디기 어려운 고통의 장도 펼쳐졌다. 대다수의 현대소설에서는 사랑에 빠지는 강력한 동기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실연의 고뇌를 주로 다룬다. 우리가 바라든 바라지 않든 현 인류에게는 로맨스의 힘이 주어졌다. 최상의 경우라면 인간이 지닌 것 중 제일 숭고한 자질을 체험하겠지만, 최악의 경우는 우리가 아는 것 중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을 겪는다. 12세기에 싹튼 이 바람은 20세기에 와서 회오리로 변했다.

현대인은 12세기에 등장한 두 신화의 계승자들이다. 이 둘은 성배신화와 트리스탄과 이졸데 신화다. 성배신화는 개성화와 영성의 문제를 다루고, 트리스탄과 이졸데 신화는 낭만적 사랑의 힘을 우리들에게 소개한다. 두 신화 모두 인간이 직접 체험한 신과의 관계를 그리고 있다. 이처럼 에너지가 고도로 충만해진 체험이 우리 의식으로 동화되었는지 아닌지는 더 두고봐야 할일이다.

 

트리스탄과 이졸데(Tristan & Isolde)

 

트리스탄과 이졸데는 서양 신화 가운데 가장 유명한 연인이다. 이들의 사랑과 고통, 죽음의 이야기는 유럽에서 오래전부터 구전되어왔다.

로누아의 왕자 트리스탄은 삼촌인 마르크의 아내가 될 왕녀 이졸데를 찾아 아일랜드로 떠난다. 그곳에서 그는 몰오르트를 쓰러뜨리고 그녀를 데리고 개선한다. 돌아오던 도중 두 사람은 시녀의 실수로 삼촌과 이졸데가 마셔야 할 '사랑의 묘약'을 마심으로써 돌이킬 수 없는 사랑에 빠지고 만다. 그 묘약을 마신 남녀는 하루를 떨어져 있으면 병이 나고, 사흘을 못 만나면 죽는다고 한다. 그래서 이졸데는 마르크 왕의 왕비가 되었으나, 연인인 트리스탄과 밀회를 계속하고 있었다.

어느 날 그들의 관계가 발각되어 두 사람은 처형을 피해 깊은 숲속으로 도망친다. 그로부터 3년 후 이졸데는 왕과 화해하여 궁으로 돌아오고 트리스탄은 추방된다. 트리스탄은 부르타뉴에서 이졸데와 닮은 아내를 얻었지만 연인을 잊을 수 없어 깊은 병을 얻게 된다. 그는 연인을 데려올 사자使者를 보내지만 끝내 그녀를 만나지 못하고 숨을 거둔다. 그가 죽은 직후 도착한 이졸데는 슬퍼하다가 결국 그의 뒤를 따라 죽고 만다.

이 두 신화가 탄생하기 전, 서구인들은 늘 집단이라는 틀 안에서 신의 위대함을 경배했다. 신은 교회의 예배당 안에 거주하면서 개개인의 삶과 직접 접촉하려 하지 않았다. 소우주로서의 인간은 자기 안의 자그마한 크기에 맞추어 살고자 했다. 이는 안전한 방식이었다. 이런 경향은 오늘날에도 여전하고 세계의 다른 문화권에서도 거의 마찬가지다.

그러나 12세기 들어 인류는 개인적인 방식으로 강렬하게 신을 체험하는 엄청난 가능성을 맛보게 된다. 이 두 신화는 전 인류에게 "맨눈으로 신을 보는 것이 모세에게는 금지되었을지 몰라도 나는 가능하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 두 신화를 이해하면 현대인의 딜렘마를 이해할 수 있다. 진정한 신화는 전체 문화를 읽어내는 맥락을 제공하고, 문화의 특질과 운명에 관해 주요한 통찰을 제공한다(성배신화는 저자의 책He : 신화로 읽는 남성성(동연 출판사,2006), 낭만적 사랑의 신화는We : 신화로 읽는 로맨틱 러브(동연출판사,2007 출간예정)참조).

트리스탄과 이졸데 신화는 우리들에게 낭만적 사랑의 귀착지 중 한 곳을 보여준다. 또한 신성을 다른 인간에게 투사할 때 빠질 수 있는 함정에 대해서도 일러준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차원을 우리의 삶으로 끌어들일 때 발생할 수 있는 혼돈을 놀란 눈으로 바라보게 해준다. 이는 마치 1만 볼트짜리 전력을 집 안으로 흘려보내는 것과 같다. 110볼트가 표준인 일반구조물로는 이런 과부하를 감당할 수 없다. 1만 볼트를 상상해보는 것은 흥미진진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이를 견딜 수는 없다. 보통 사람의 능력으로는 1만 볼트의 충격을 흡수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우리 문화는 1만 볼트짜리 경험을 모든 결혼생활의 토대로서 처방한다. 하지만 결혼생활이 유지되는 경우를 보면, 부부가 둘 다 110볼트의 차원으로 내려와서 그들만의 사랑의 에술을 습득한 경우다.

110볼트짜리 사랑은 1만 볼트의 밝기를 보여주는 화려한 조명탄 보다 훨씬 가치 있다. 그리고 인간적으로 동화될 수 있다. 인간적 차원에서 일어나는 사랑은 하늘에 가닿는 로맨스의 경험보다 훨씬 더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