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기328 봄날과 돌/오규원 봄날과 돌/오규원어제 밤하늘에 가서 별이 되어 반짝이다가슬그머니 제자리로 돌아온 돌들이늦은 아침잠에 단단하게 들어 있네봄날 하고도 발끝마다 따스한햇볕 묻어나는 아침-오규원(1941-2007)오규원 시인은 “내 시는 두두시도 물물전진(頭頭是道 物物全眞)의 세계다”라고 썼다. 모든 존재 하나하나가 도(道)이고, 사물 하나하나가 모두 진리임을 밝히는 것이 자신의 시 세계라는 뜻이겠다. 그러면서 본인의 시는 존재를 통해서 말하고, 존재의 편에 서 있다고 했다. 물론 시에는 시인의 주관이 개입하지 않을 수 없지만, 시인의 주관도 “현상에 충실한 현상의 의식”일 뿐이라고 말했다.이 시는 이러한 시인의 시론(詩論)을 엿볼 수 있다. 시인은 돌들을 본다. 돌들은 움직이지 않고 있으니 마치 깊은 잠에 빠져 있는 것만 같.. 2025. 3. 3. 대구신문 <좋은 시를 찾아서> 462 이병금 시인 대구신문 <좋은 시를 찾아서> 462 이병금 시인작성자:겨울판화(박윤배)작성시간:2025.03.02 강의 시작/이병금 시인내리는 비가 좋아창문을 반쯤 열어둔 채설풋 잠들다가슬픗 깨곤 했다부슬비 다발에서한두 놈 튀어나와더러 눈을 뜨고혹은 손가락을 펼쳐먼 곳의 소식을 전했다누운 내 콧등에도작은 빗방울 한 놈이 지나갔다아주 오래된 정이 되살아나서환한 밤을 타고 올라갔다빗방울을 커다란 손바닥으로 떠받든 채분홍빛으로 젖은 몸은 더 바랄 게 없다는 듯붉은 우주 강가에궤도를 이탈한 행성?여기가 강의 끝이라고꽃핀 활주로를 가리켰다◇이병금= 1998년 ‘시와시학’으로 등단하였으며 시집으로 ‘저녁흰새’, ‘어떤 복서’ 등이 있고 평론집으로 ‘시 읽기의 새로움’이 있다. 비를 좋아하는 시인이다. 창문을 반쯤 열어둔 채 .. 2025. 3. 3. 기도 1/나태주 기도 1/나태주 내가 외로운 사람이라면나보다 더 외로운 사람을생각하게 하여 주소서내가 추운 사람이라면나보다 더 추운 사람을생각하게 하여 주옵소서내가 가난한 사람이라면나보다 더 가난한 사람을생각하게 하여 주옵소서더욱이나 내가 비천한 사람이라면나보다 더 비천한 사람을생각하게 하여 주옵소서그리하여 때때로스스로 묻고스스로 대답하게 하여 주옵소서나는 지금 어디에 와 있는가?나는 지금 어디로 향해가고 있는가?나는 지금 무엇을 보고 있는가?나는 지금 무엇을 꿈꾸고 있는가? 2025. 3. 2. 작은 기도 /정호승 작은 기도 /정호승 누구나 사랑 때문에스스로 가난한 자가 되게 하소서누구나 그리운 사립문을 열고어머니의 이름을 부르게 하소서하늘의 별과 바람과땅의 사랑과 자유를 노래하고말할 때와 침묵할 때와그 침묵의 눈물을 생각하면서우리의 작은 빈 손 위에푸른 햇살이 내려와 앉게 하소서가난한 자마다 은방울꽃으로 피어나우리나라 온 들녘을 덮게 하시고진실을 은폐하는 일보다더 큰 죄를 짓지 않게 하소서 2025. 3. 2. 그대 앞에 봄이 있다/ 김 종해 그대 앞에 봄이 있다/ 김 종해 우리 살아가는 일 속에파도치는 날 바람부는 날이어디 한두 번이랴그런 날은 조용히 닻을 내리고오늘 일을 잠시라도낮은 곳에 묻어 두어야 한다.우리 사랑하는 일 또한 그 같아서파도치는 날 바람 부는 날은높은 파도를 타지않고낮게낮게 밀물져야 한다.사랑하는 이여상처받지 않을 사랑이 어디 있으랴추운 겨울 다 지내고꽃필 차례가 바로 그대 앞에 있다. 2025. 3. 2. 사과야 미안하다 / 정일근 사과야 미안하다 / 정일근 사과 과수원을 하는 착한 친구가 있다. 사과꽃 속에서 사과가 나오고 사과속에서더운 밥이 나온다며, 나무야 고맙다 사과나무야 고맙다, 사과나무 그루 그루마다 꼬박꼬박 절하며 과수원을 돌던 그 친구를 본 적이 있다. 사과꽃이 새치름하게 눈뜨던 저녁이었다. 그날 나는 천 년에 한 번씩만 사람에게 핀다는 하늘의 사과꽃 향기를 맡았다. 눈 내리는 밤에 친구는 사과를 깎는다. 툭, 칼등으로 쳐서 사과를 혼절시킨 뒤 그 뒤에 친구는 사과를 깎는다. 붉은 사과에 차가운 칼날이 닿기 전에 영혼을 울리는 저 따뜻한 생명의 만트라. 사과야 미안하다 사과야 미안하다. 친구가 제 살과 같은사과를 조심조심 깎는 정갈한 밤, 하늘에 사과꽃 같은 눈꽃이 피고 온 세상에 사과 향기 가득하다. 2025. 2. 14. 이전 1 2 3 4 5 6 7 8 ··· 55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