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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자의 시 1

탄생/김선자

by 김선자 2023. 4. 15.

탄생

바늘 敍事 26

 

 

김선자

 

 

쓸쓸한 곳에 사는 너는 예부터 즐겨 입던

삼베 모시 광목 옥양목 양지쪽에 펴 놓고

흰 옷 바라기 눈부셔 하누나

 

삼신 할망 손 분주하더니

연한 꽃잎 찢고 너를 끄집어 내었도다

땅 김 오를 적 생겨난 너 복사꽃나무 밑에 오롯이 앉아

설문대 할망 거섬을 만들 적 생각하누나

 

할망 너를 안고 장대 같이 쏟아지는 오줌을 참지 못해

우도를 만들고 유채꽃 노랑향기 들이 마실 적

두 다리 나란히 이곳에 뻗고

거섬에서 홀로 머리 베고 누웠다가 땅을 짚고 일어서누나

 

삼신 할망 우뚝 서서 바다를 호령하누나

눈물로 바닷물 넘치게 하지 마라

동백꽃 똑 떨어질 적 할망 뜨거운 죽에 빠져 죽어버려

다시 살아나올 적 따오기 울음 울어 울었도다

할망 손에 기댄 채 너는 몇 만 년 동굴로 들어가려하누나

 

흰 옥양목 치마저고리 정갈하게 갖추어 입고

쓸쓸한 곳에 사는 너는 길 떠날 준비를 하였도다

섬에 엎디어 시나 쓰고 싶어 잠들지 못할 적

바다소리 조곤조곤 속삭이누나

거섬 거섬 거섬 거섬

 

 

ㅡ시집 「어머니의 바늘」( 시와시학,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