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김선자
그의 마음은 종이학 날리듯
품 안의 자식들을 하나하나 떠나보내는 일
사십대 후반에 아내를 잃고
구순이 넘도록 그때의 두 배로 살았다는 말
미안함의 꼬리가 되어 늘 따라 다니고
그에겐 그 꼬리가 너무 무거웠다
어둠이 아슴아슴한 밤
집 앞 꽃밭에서 거무스름한 무엇이
이물처럼 노젓는 사공처럼
자그마하고 나직한 그림자 하나 사분거렸다
쿵쾅거리는 심장 소리
샛바람이라도 불어
파도에 배가 뒤집혀지기를 바라는 심사
어딘가로 떠 내려가기만 바랐다
돛대도 삿대도 없이
아슬아슬 흔들리는 빈 배 한 척
퀴퀴한 냄새가 코를 찌르는 방
책상도 옷걸이도 작은 서럽장도 낡은 의자도 검은테 돋보기안경도
그가 없는 방에서 쓸쓸했다
구석에 세워둔 지팡이 한 쌍 주인이 떠난 허허한 바다에서
그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오도카니 외로워 보였다
ㅡ시집 《어머니의 바늘》, 시와시학,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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