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김선자의 시 2

네거리 춤/김선자

by 김선자 2023. 11. 15.

네거리 춤

 

 김선자

 

 

무료급식소 꺼칠한 골목 담벼락

기대어 자라난 바랭이 속에 숨어 피어난 애기똥풀은

우묵한 반찬그릇이다

 

검게 변한 시멘트 계단

거무스레 허물어진 이빨들로 턱뼈는 끙끙거린다

겨우 올라가는 발걸음

 

늦가을 햇살 아래 곰팡이

검은색 희게 보이게 구석구석 꾸미는

구부정한 등 오그라든 손등 플라타너스 잎새 같은

 

재주넘기 혀에 걸린 네거리

새소리 개소리 자전거소리 사중주 악보의 네 박자 마디

할아버지 느려진 발자국소리에 뭉개진다

 

서툰 행진곡에 돌아서던 한 분

한 바퀴 두 바퀴 곡조에 맞추어 제법 살갑게

돌고 돈다, 아찔한 짝지어 늘어선 밥 그릇 든 행렬

 

촉촉 여린 애기똥풀

꿈꿈한 냄새 시절이 어둔 네거리 입

대신하여 노란 웃음이 저릿저릿 채우고 있다

 

 

 

 

'김선자의 시 2' 카테고리의 다른 글

풀벌레는 무슨 말로 노래하나/김선자  (0) 2023.11.15
젊은 날 뿌린 꽃씨/김선자  (0) 2023.11.15
에밀레종에 대한 마음 줄/김선자  (0) 2023.11.15
야누스*/김선자  (0) 2023.11.15
익숙하다/김선자  (0) 2023.1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