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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자의 시 2

풀벌레는 무슨 말로 노래하나/김선자

by 김선자 2023. 11. 15.

풀벌레는 무슨 말로 노래하나

 
 

김선자
 
 
그는 힘이 없는 사람
사람들 뒤에 있어야 마음이 편했다
그의 하루는 뒷방에 앉아서
벽 집고 돌며 노래 부르는 일이었다
가락은 구성지게 들리고
목소리는 낮고 말은 입안에서 웅얼거렸다
포장마차에서 마신 소주
얼큰히 취한 발걸음으로
가난한 동네 언덕배기를 오르며
올려다 보는 초승달
반지하 방으로 들어가면서도 따라오는
달빛, 희미한 그림자
그의 생은 그림자도 없었지만
그는 늘 그림자 하나 만들려고 노래 불렀다
날아오르는 노래 가사
익지 않아 날것인 쇤 소리들
갓 알에서 깨어난 여린 숨소리
어린시절  흙담 곁에서 소꿉놀이하던
순이만 알아 들을 수 있는
작고 예쁜 소리로 노래하는 것이었다

그의 몸은 희고 아직 털이 나지 않은 애벌레였다
애벌레는 더 작고 잘 보이지 않는
벌레들 헤치며 자랑스럽게 기어 다녔다
그가 세상 떠나던 날 꿈에서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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