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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글

수 련/채 호 기

by 김선자 2024. 4. 6.

 

수 련


채 호 기


안개 낀 새벽에 수련의 저 흰 빛은
수련이 아니다. 누가 공기의 흰 빛과
수련의 흰 빛을 구분할 수 있겠는가?
부풀어오르며 대기를 가득 채우는 수련,
공기처럼 형태도 없이 구석구석
끝도 없이 희게 빛나는 수련이여!

안개 낀 새벽에 공기는 수련처럼
희게 빛나다가 물처럼 푸른 두께로
출렁인다. 수련은 창틀 없는 유리처럼
푸른 깊이의 메아리. 물이 저 밑바닥의
내면으로부터 물풀을 흔드는 물고기
헤엄치는 혀로 푸드덕 말을 할 때
솟아오르는 커다란 공기 구릉―수면을 깨뜨리는

흰 포말 흰 파편은 수련,
물-말이 깨어져 날카롭게 빛나는 흰 수련!

수련 주위의 보이지 않는 저 공기는
수련의 생각들이다.
우리가 글자를 읽어나갈 때
우리 주위에서 태어나는 생각의 파동들처럼.



<제21회 김수영문학상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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