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어디에 계십니까
백주은
세상이 하 수상하여
도 닦는 기분으로 두문불출,
면벽하다 간만에 집을 나섰더니
거리에서 누가 묻는다.
지금 어디에 계십니까?
길에서 마주 서 있는 사람에게
이 무슨 어색한 질문일까.
점잖게 타이르려다가 주위를 둘러보니
지금 어디에 계시느냐는 질문과
놀거나 쉬고 있다는 대답들이
그 무슨 서류가 된 듯싶네.
하 수상한 세월 탓에
사람들이 마음을 비워버린 것일까?
주고받는 대화들이 온통
선문답이 아니면 동문서답 형이니
시대가 만드는 게 영웅만은 아닌가 싶네.
그래 세월이여 흘러가거라.
풍파여, 부서지어라.
이 몸은 남겠노라, 나의 벽 앞에
<제18회 김수영문학상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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