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김선자의 시 1

공작새 꽁지깃/김선자

by 김선자 2023. 3. 20.

공작새 꽁지깃

바늘 서사 17

 

 

김선자

 

 

알 수없는 겹겹의 고물거림은

분홍 바늘 쌈지 올려 더 황홀하다

초록이 엿보는 물내음

어울려 스며드는 문자를

도려내어 행간에 세우는 순간

놓쳐야 할 것들 놓친 오늘이 화사하다

긴 그림자 토막 내어 접시에 올려놓는다

와인에 취한 칠월의 꽃

취중에 부는 하모니카 구성진 떨림

사그라지는 것들의 기억은 어둠속에 두지만

돌아 앉아 쥐어보는 두 손의 문자는

오직 연필로 그려내는 자간의 이랑이다

어제의 상큼함도 오래 두면

시큼해 오는 그리움이다

소란하게 옛이야기로 노래하는 새들에게

퍼석한 돌담 위에서 아직도 추게 하는 춤

어여쁘게 치켜든 공작새의 꽁지깃이다

대청마루에 놓여진 놋화로 곁 할머니 곰방대가

어둠에 피워 올리는 뭉클한 연기

초록 불쏘시개 분홍 불쏘시개 서로 만나

은밀한 살빛으로 살아나는 불씨여

사랑이여 인연이여

합과 합이 분홍으로 꿰매는

자귀나무 꽃핀 그늘 아래

펼쳐든 화장 붓의 하루는 따뜻하다

 

 

ㅡ시집 《어머니의 바늘》, 시와시학, 2019.

       

      

'김선자의 시 1'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백마는 가자 울고/김선자  (0) 2023.03.25
너는 혼자가 아니다/김선자  (1) 2023.03.20
골무의 노래/김선자  (0) 2023.03.20
고쟁이/김선자  (0) 2023.03.20
감자 먹는 사람들/김선자  (0) 2023.03.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