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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자의 시 1

두리반/김선자

by 김선자 2023. 3. 25.

두리반

 

 

김선자

 

 

 감나무 밑 나무평상

두리반에 둥그렇게 모여 앉은 식구들

얼굴이 둥글넓적한 언니

철부지 남동생

맛깔스럽게 차려진 저녁 밥상

아버지 먼저 수저 드시면

기다렸다는 듯이

달그락 달그락

수저소리도 요란하게

맛있는 반찬은 자기 앞으로

쓰윽 당겨 먹던

해거름의 정겹던 시간

파 송송 고추가루 조금 넣고

참기름 조르륵 부은 양념장

푹 찐 호박잎에 듬뿍 찍어 입에 넣으면

어머니 손맛 흘러넘치는 강물

아버지 잔기침에

우적우적 반찬 씹는 소리

꿀꺽 목젖 울리게 밥 넘기는 소리

사랑은 담 너머 대추나무에 걸린다

 

야야저 못하나 더 다오

오늘도 그 목소리

처마에 올라가는 수세미 넝쿨에 달리고

못과 망치 든 아버지

뚝딱뚝딱 탁탁탁 못질 하신다

아버지 사라진 자리

밥그릇에 소복소복 담기던

두리반 못질 소리

쏟아지던 양념장

 

 

ㅡ시집 《어머니의 바늘》, 시와시학,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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