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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자의 산문7

숲길을 걷는다/김선자 숲길을 걷는다 김선자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를 나서면 작은 숲길이 나온다. 단지 마다 조성된 산책길이다. 여러 종류의 나무가 심겨져 그늘이 짙고 가볍게 걷기가 좋다. 길옆에는 무궁화가 죽 늘어서 있고 꽃들이 피어 있다. 무궁화는 비록 수수한 모양의 꽃이지만 아무 곳에서나 잘 자라고 오래도록 꽃을 피운다. 무궁화는 국화(國花)이면서도 한때는 다른 꽃에 밀려서 환영을 못 받아 보기가 드문 때도 있었다. 그러나 요즘은 길옆이나 공원 등 어디를 가나 자주 볼 수 있고 이웃 사람을 본 듯한 모습이다. 이 무궁화는 누구나 좋아하는 꽃은 아닐 것이다. 꽃이 예쁘다거나 향기가 진하다거나 이런 것과는 상관없이 주변에서 늘 보고 살았기 때문이리라. 봄부터 가을까지 흰색, 연보라색 꽃이 피고 지고하여 오래도록 꽃을 볼 수는.. 2022. 10. 10.
친구를 만나러 간다/김선자 친구를 만나러 간다 김선자 우리는 친구다 친구 아이가 만나는 우리들은 늘 이렇게 말한다 앵무새처럼 말한다 친구다 우리는 친구다 친구 아이가 무엇으로? 어떻게? 왜? 만나러 간다 친구를 만나러 간다 우리는 친구니까 우리는 친구라고 늘 말하니까 친구 아이가 하고 앵무새처럼 되뇌이니까 그러나 식사가 끝나자 말자 우리는 가방을 살며시 거머쥐고 살짝 엉덩이를 들고 야릇한 미소를 띄우며 가볍게 등을 돌리고 가 버린다 우리는 친구니까 친구 아이가 밥을 먹는데 방해가 될가봐 느린 한 사람이 밥을 먹는다고 고개를 쳐 박고 숟가락 젓가락을 옮기고 있을 동안 주위는 텅 비어간다 숟가락을 놓으려고 얼굴을 드는 순간 아무도 없는 빈 방이 보인다 우리는 친구니까 친구 아이가 네가 밥을 먹는데 방해가 될가봐 그림자처럼 떠나간 우리.. 2022. 10. 9.
광장에서 쉬고 있는 비둘기/김선자 광장에서 쉬고 있는 비둘기 김선자 한 계단 두 계단씩 회색계단을 누군가 내려간다 겨울 햇살이 희미하다 광장에 있는 나무 의자에 오그리고 앉은 사람들 어깨를 두드리며 추위가 내려 앉는다 저들의 머리 위로 교회의 첨탑이 별을 달고 반짝이고 있다 성탄절 케롤송 트리에 대롱거리는 별 전하고 싶은 사랑도 매달려 있다 흐려지던 하늘에서 흰눈이 내리기 시작하더니 부연 안개로 갈아 앉는다 광장으로 내려오는 사람들 머리 위로 날고 있는 비둘기들 푸드득 땅위로 내려 앉고 허기를 채우려 그들에게 우루루 모여 들고 있다 누군가 모이를 던져 준다 흩어지며 내려오는 밥알들, 눈 속에서 눈으로 녹아 들고 고개를 주억거리며 먹이를 향해 종종거리는 비둘기들 광장에서 쉬고 있는 사람들 눈 속으로 들어간다 사람들 시선이 힘없이 모인다 그.. 2022. 10.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