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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자의 시 273

나는 너가 아니고 내가 나라서 참 좋다/김선자 나는 너가 아니고 내가 나라서 참 좋다 김선자 돌아가 보자 이제부터 시작이다 오늘부터 이제 알겠다 나는 너가 아니고 내가 나라서 너는 내가 아니고 너는 너라서 참 좋다 2023. 6. 23.
강은 혼자 가지 않는다/김선자 강은 혼자 가지 않는다 김선자 젊은 그대여 오늘 그대는 더욱 더 싱그러운 과일같네 향긋하다오 수줍어하는 그대 뺨 한떨기 장미같네 나 어느 날 그대 방을 엿보았다네 문이 조금 열려있고 햇살이 가늘게 비쳐든 오후였네 그대가 가만히 앉아 있더군 그대 머리위로 시간이 조심조심 지나가는 게 느껴지더군 그 순간 우리라는 생각이 들더군 함께 걸어 나가 광장에서 만나도 되는 무리들 중에서 말이네 젊은 그대여 앞에서 힘차게 걸어가는 모습 세계가 그대 등에 펼쳐지고 우리는 시계를 돌리며 즐거워 했네 백향목 같은 그대여 침향이여 냇가에 심겨진 진실이며 악에 물들지 않은 청초한 모습이며 구름도 비껴가는 나무 그늘 그대 아래 앉아서 땀을 닦는 늙은이의 손이 아름다운 청춘처럼 보이네 우주의 동맥과 정맥 앞서거니 뒤서거니 돌고 도.. 2023. 6. 20.
세월/김선자 세월 김선자 한 자루의 연필로 쓰고 싶다 싸리나무 향기가 배어있는 연필로 지나온 날들을 적어보고 싶다 그 나무로 만든 빗자루로 쓸어 보고 싶다 어지러운 날들 풀벌레의 작은 몸짓처럼 구불구불 말랑한 것들 적어보고 싶다 이미 고직체로 굳어진 화석층 안 나무들이 간직한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구겨진 길은 다림질로 주름 펴고 싶다 다시 잡을 수 없는 세월은 쉼 없던 영욕과 낭패 바람 따라 가고 있던 연둣빛 날개 써야할 것은 여기에 남아 있는 흔적뿐이다 가늘고 긴 무명실에 매달려 구름 잡으러 연필이 못다 한 길고 긴 세월 날아가는 무수한 사연들 구성진 가락으로 소리치고 싶다 2023. 6. 20.
고요도 정적도 물결처럼 흔들린다/김선자 고요도 정적도 물결처럼 흔들린다 김선자 빛이 춤추는 성전 바닥은 푸르고 붉어서 고요도 정적도 물결처럼 흔들린다 현란한 색들 자지러질 듯 벽에 매달린 십자가 위 신의 아들 일렁이던 눈꺼풀도 무겁다 맑고 투명하던 창 빛이 통과하기엔 힘겨웠던 무수한 죄악의 날들 숨겨놓은 삶의 조각들 순결도 덧대면 눈물이 되는 고백에서 어두워진 그늘도 희게 씻겨진다 한 낮 형형색색 몸 바꾸던 카멜레온도 빛이 통과한 유리 상자에 갇혀 고개 떨구고 벗기는 허물 오물 흥건한 바닥도 흐늘거리는 빛의 성찬도 씻겨 지지 않던 우리의 상처도 응답하는 기도가 된다 오로지 창을 통해 들어오는 빛 세속의 어떤 보석으로 치장한다 해도 번뇌와 증오에 얼룩진 영혼은 꼭지 튼 빛의 샤워기 앞에서 주르르 녹아내린다 드디어 색유리가 되고 마는 2023. 6. 20.